대법원 제공CBS노컷뉴스가 단독 연속 보도한 '부장판사 비위의혹과 윤리감사관 부실조사' 문제를 계기로 대법원이 제도 개선에 나선다. 이전까지 윤리감사관은 법관 비위 의혹이 불거져도 강제적인 조사 권한이 없어 한계가 있었다. 대법원은 제도 개선을 통해 강화된 감사가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강제수사권, 자료요청 법률 근거 없어"
10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대법원은 지난달 23일 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 '나라장터'에 '법관윤리 제고를 위한 대법원 윤리감사관의 권한에 관한 연구 용역' 공고를 냈다. 지난 6일까지 접수 기한이었지만 아무도 응모하지 않아 유찰됐다. 대법원은 조만간 재공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취재진이 확보한 연구용역 제안요청서를 보면 법관 비위를 조사하는 대법원 윤리감사관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내부적 감사기관으로서 강제수사권이 없어 당사자·관련자의 협조를 통해 자료를 확보할 수밖에 없고, 외부기관에 대해 객관적 자료를 요청할 법률상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법관에 대한 내부 감사기관의 강제적 조사 수단 활용에 대한 국내외 사례 조사를 요구했다. 나라별로 강제적 조사수단 규정을 두거나 두고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삼권분립 등 사법부의 지위가 헌법상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선행 연구도 주문했다.
연구용역 제안요청서. 대법원 제공이를 바탕으로 현행 법령상 윤리감사관 감사 한계와 법관 비위행위 조사를 실질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마련돼야 하는 조사방법, 실질적인 감사를 위한 대법원 규칙 개정안 연구를 요청했다.
아울러 '헌법의 법관 신분보장에 따라 징계 처분에 의하지 않고는 불리한 처분을 할 수 없고, 현실적으로 최종 징계 결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한계'도 지적됐다. '사법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징계처분 전 비위 혐의가 상당한 법관에 대한 중간적 처분을 위한 수단 검토'도 요구했다.
대법원은 앞으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법관징계법 또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제시를 위한 자료와 대법원 윤리감사관실 관련 규칙·예규 개정 방향을 정할 검토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잇따른 비위…내부 견제장치 마련될까
앞서 CBS노컷뉴스는 2024년 6월 당시 제주지방법원 소속이던 오창훈 부장판사와 여경은 부장판사, 강란주 부장판사 3명이 근무시간에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이 출동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들 판사는 사건이 불거지고 1년이 지나 징계가 아닌 법원장 경고만 받았다.
윤리감사관 조사의 한계와 법관 신분보장에 따라 최종 징계 결정이 늦어지는 문제점이 노출된 것이다. 특히 이 정도 사안의 경우 일반 공무원은 최소 감봉부터 최대 정직을 받지만, 이들 판사는 훈계만 들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이 판사들에게는 적용되고 있지 않고 있다.
여경은 판사와 A 변호사가 나눈 SNS 대화 캡처사진(왼쪽)과 A 변호사가 여 판사와 나눈 대화 캡처사진을 주점 여종업원에게 보낸 SNS 대화 캡처사진. 제보자 제공아울러 CBS노컷뉴스는 음주난동 판사 중 한 명인 여경은 판사가 재작년 A 변호사로부터 유흥주점 접대를 받고 서로 자주 연락한 정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캡처사진과 통화기록 등을 통해 보도했다. A 변호사는 여 판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사법거래를 시도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은 당사자들 주장만 듣고 "(여 판사와 A변호사가) 고등학교 동문 관계인 것은 사실이나,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는 등의 친분은 없는데도 해당 변호사가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윤리감사관에게 강제적인 조사권한이 없다 보니 부실조사가 이뤄진 것이다.
제주 부장판사 비위의혹 외에도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사건 1심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의 룸살롱 접대 의혹에 대해서도 윤리감사관 부실조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법관들이 해외여행 경비를 면세점 팀장으로부터 대납 받은 의혹이 일거나 만취 운전을 하다 적발되는 등 비위가 잇따랐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근 법관들의 공직기강이 약화되고 업무 외 활동에서의 법관윤리 준수 인식 부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이번 용역을 통해 내부 견제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장판사 근무시간 음주난동이 벌어진 노래방. 고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