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9차대회 기념 열병식 주석단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의 대북 유화책에 대해 돌아온 북한의 답은 '기만극'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6일 노동당 제9차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한국은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이라고 규정하며 정부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에 적신호가 들어온 상황이지만, 정부는 일관된 추진 의지를 밝혔다.
李정부 유화책에도 "역대급 호전적 대남선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북 무인기사건 재발방지대책 발표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북한은 기존의 무시전략을 넘어 아예 우리 정부를 '적국'으로 규정하고 극단적인 위협마저 서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한국의 현 집권정권이 겉으로 표방하는 유화적인 태도는 서투른 기만극이고 졸작"이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했다.
더 나아가 "한국과 잇닿아 있는 남부 국경선을 가급적 빠른 기간 내 요새화" 할 것이라며 "핵보유국의 문전에서 실행되는 한국의 부잡스러운 행동이 우리의 안전 환경을 다쳐놓는 행위로 인정되는 경우 우리는 임의의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가장 적대적인 국가인 남한과 영원히 결별하되 필요시 압도적인 힘(핵무기)으로 제압하겠다는 역대급 호전적 대남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한미 불협화음 노출까지 감수한 정부…"일희일비 않을 것"
북한은 지난 22일 노동당 제9차 대회 4일 회의에서 당 규약 개정과 제9기 당중앙지도기관 선거를 진행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당 총비서로 추대하는 결정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연합뉴스우리 정부로선 한미동맹 엇박자 논란까지 감수하며 내민 손이었기에 더욱 뼈아픈 화답이었다. 앞서 정부는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 권한 조정 △9·19 남북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 복원 △한미연합연습 규모 조정 등 대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조치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번번이 주한미군과의 마찰이 노출되며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다만 정부는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 없이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오랫동안 쌓인 적대적인 감정과 대결 의식을 일순간에 없앨 수는 없다"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하고 협력하기 위한 노력을 해서 조금씩 신뢰를 쌓고 공감을 만들어 가면 결국 한반도에도 구조적인 평화와 안정이 도래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전날 북한의 당대회를 "경제·민생 중심의 기조를 강조해 한반도 정세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갖는다"고 평가했던 정동영 통일부장관도 이날 "북한이 밝힌 적대적 두 국가는 남과 북 모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美에 대화 공 넘긴 北…정부 "페이스메이커 역할 경주"
연합뉴스북한은 미국을 향해서는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위원장은 미국을 향해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조미관계의 전망성은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밝혔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대북제재, 한미연합연습 등의 '적대시 정책' 철회를 거듭 압박하며 대화 재개의 공을 미국으로 넘긴 것이다. 이에 조만간 이뤄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한 북미 대화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당초 구상대로 북미대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역할에 주력할 전망이다. 다만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기조에 쐐기를 박은 만큼 '코리아 패싱'을 피하기 위한 한미 간 소통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석좌교수는 "북한의 대남 적대정책과 관계없이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이행할 필요가 있다"며 "북미대화와 남북대화의 연계를 위해 한미 간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