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영화를 예매하고 있다. 연합뉴스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신인류'의 도래를 목도하고 있다. '잘파'(Zalpha). Z세대와 알파세대를 한데 묶은 말이다. 지금 10대, 20대를 가리키는 이 그룹은 앞선 어느 세대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다. 말과 글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다루는 법을 먼저 깨우쳤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한국독립영화협회 백재호 이사장은 "가끔 초등학생들이 만든 영화를 접하기도 하는데 굉장히 수준 높다"며 "이들이 영상 언어·문법에 무척 익숙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고 전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에서 펴낸 보고서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콘텐츠 분야별 이용률을 파악한 결과 20대는 △OTT 99.1%(1위) △만화·웹툰 47.8%(1위) △애니메이션 41.6%(2위) △음악 94.4%(1위) △캐릭터 60.3%(2위)로 사실상 콘텐츠 전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다.
10대 역시 △OTT 94.6%(4위) △만화·웹툰 44.2%(2위) △애니메이션 55.2%(1위) △음악 85%(3위) △캐릭터 71.1%(1위)로 고르게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이 조사에서 연령대별 이용 콘텐츠 분야 개수 역시 10대가 3.5개(1위), 20대가 3.4개(2위)로 전 세대 평균인 2.5개를 크게 웃돌았다.
결과적으로 10대, 20대가 모든 콘텐츠 분야에서 1위를 독식한 점은 눈여겨볼 일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소위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 사회를 겪어온 그들이다. 이는 잘파세대가 이미 우리 사회 소비 주도층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왼쪽)과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포스터. 두 작품은 해당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익히 접해온 잘파세대 관객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각각 누적관객수 569만명(연간 박스오피스 2위), 343만명(6위)을 기록했다. CJ ENM·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발길 끊긴 영화관…"비용 대비 효용·편리성 낮다"
잘파세대가 선호하는 콘텐츠 특징을 파악하고 플랫폼 접근성을 넓히려는 각 문화·산업계 주체들의 시도는 이제 기본값이 됐다.
앞서 소개한 콘진원 보고서를 보면 숏폼(쇼츠·짧게 편집해 올린 동영상)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에서 10대는 76.3%가, 20대는 82.2%가 쇼츠를 이용했다. 이 역시 전 연령대 평균인 58.6%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렇듯 오늘날 잘파세대는 콘텐츠 각 분야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이를 전 연령대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이 같은 흐름이 콘텐츠 사용자 경험에 있어서 뚜렷한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원재 교수는 "쇼츠는 짧은데다 (영화관 상영 시간 등과 달리) 기다릴 필요가 없다"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드는 셈인데, 결과적으로 금전과 시간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 요인은 영화 소비 행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길을 줄인 데는 비용 대비 낮은 효용성과 편리성 등 문제가 가장 컸다.
영화진흥위원회 보고서 '2023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극장 관람 빈도 감소 이유는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24.8%) △영화나 극장 품질 대비 티켓 가격이 올라서(24.2%) △극장 개봉 후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관람 방법으로 시청이 가능해져서(16.6%) △경제적인 여유가 줄어들어서(15.2%) △극장에 가서 관람하는 것이 번거로워서(11.4%) 등 순이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멀티플렉스 중심 '천만영화' 시스템이 붕괴되고 주도권이 OTT로 넘어가면서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방식, 소비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며 "그 변화된 틀에 영화계가 하루빨리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영화진흥위원회 '2023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 보고서 캡처본질 되찾기·다양성 확대에 해법…"공존해야만 한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 격한 흐름 안에서도 어제를 갈무리하고 오늘을 벼리며 더 나은 내일을 열려는 시도는 분명 유의미하다.
영상콘텐츠 비평가인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윤석진 교수는 "이제는 소비자들이 각자 보고 싶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쇼츠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한국영화 역시 그동안의 사이즈 경쟁에서 벗어나 영화만이 포착할 수 있는 독자적인 색깔 찾기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특히 윤 교수는 "소비자 니즈도 중요하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스크린과 사운드 등 영화의 본질을 최적화하는 콘텐츠 방향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그 흐름이 독립영화계에서 포착되고 있는 만큼,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영화관 등 플랫폼 지분을 나누고 공존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제작사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만들어 둔 한국영화가 한참 뒤에야 풀리면서, 그 사이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소비로 더욱 높아진 관객 눈높이를 따라갈 수 없었던 측면도 컸다"며 "관객들이 소중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다시 극장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도록 한국영화 이해 당사자들이 여러 시도를 논의하고 빠르게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표는 "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접근했을 때 학생들이 교육 차원에서 극장을 찾아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돕는 일 역시 중요해 보인다"며 "그래야만 한국영화계도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면서 5년 뒤, 10년 뒤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