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국경순찰대 요원의 무차별 총격에 사망한 미국 시민권자인 제프리 프레티(37) 추모현장. 연합뉴스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국경순찰대 요원의 무차별 총격에 시민권자인 제프리 프레티(37)가 숨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은 총기를 소지한 프레티가 단속을 위한 법집행을 방해했고 무장해제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방어사격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뒤늦게 공개된 현장 영상은 이와 거리가 멀다.
1월 들어 두 번째 미국 시민권자 사살
25일(현지시간) 국토안보부(DHS), 미니애폴리스 경찰, 외신 등을 종합하면 전날 오전 9시쯤 미니애폴리스에서 제프리 프레티가 연방국경순찰대 요원들이 쏜 총에 맞고 사망했다.
프레티는 미니애폴리스 재향군인(VA) 병원에서 약 5년간 중환자실 간호사로 성실하게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번 사건 현장은 지난 7일 또다른 미국 시민권자인 37세 여성 르네 니콜 굿이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으로 숨진 현장에서 1마일(약 1.6㎞)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굿은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하차 요구에 불응한 채 자신의 SUV 승용차로 현장을 떠나려다 총격을 받았다.
사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단속에 저항하던 사람이 차로 들이받으려 해 단속 요원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총격을 가했다"고 해명했지만, 이 역시 현장 공개 영상과 차이가 있어 빈축을 샀다.
보름 남짓한 사이에 두 명의 시민권자가 이민 단속 과정에서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미국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도 동요하는 분위기다.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이민당국 요원들이 즉시 미네소타주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월즈 주지사 등 민주당 정치인들이 연방 요원들의 합법적인 법 집행을 방해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법 집행관들 학살" 단호한 트럼프와 국경순찰대
이민세관단속국(ICE) 반대 시위. 연합뉴스사건 발생 직후 DHS는 성명을 내고 "(프레티가) 9㎜ 반자동 권총을 가지고 미국 연방국경순찰대 요원들에게 접근했다"며 "요원들이 무장을 해제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레고리 보비노 국경순찰대 사령관은 프레티에 대해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고 법 집행관들을 학살(massacre)하려 했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아가 트루스소셜에 권총 사진을 올리며 "장전됐고 (2개의 꽉 찬 추가 탄창과 함께) 발사 준비가 됐다"는 글을 올렸다.
프레티를 정당한 법 집행에 저항하는 무장한 '반국가세력'으로 치부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인 제이콥 프레이 미니애폴리스 시장과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도 겨냥해 "거만하고 위험하며 오만한 수사로 내란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월즈 주지사가 전날 기자회견에서 "연방 요원들이 혼란과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 그들을 미네소타에서 철수시키라"고 촉구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WSJ 캡처NYT·WSJ 진보·보수 매체 "당국 설명, 영상과 모순" 일제히 비판
프레티가 총격을 받고 사망한 현장 촬영 영상이 뒤늦게 속속 공개되면서 미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연방 당국의 해명이 모순된다는 분석 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연방 당국은 프레티가 총을 들고 요원들에게 접근했다고 말했지만, 현장 영상들을 보면 프레티는 (요원들에 의해) 바닥에 제압됐을 때 무기가 아닌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 "당국의 설명은 영상들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호의적이었던 보수 성향의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니애폴리스 총격에 대한 정부 설명이 영상과 모순된다'라는 제목의 홈페이지 헤드라인 기사를 타전했다.
WSJ은 "이민 단속 요원들이 24일 대치 상황을 어떻게 치명적으로 악화시켰는지 보라"며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현장 영상들을 분석 그래픽과 함께 게재했다.
WSJ은 특히 "연방당국은 '연방 요원들이 방어 사격할 때까지 프레티가 무장 해제에 폭력적으로 저항했다'고 주장했지만, 행인들이 찍은 영상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현장 영상을 보면 프레티는 여성 시위자를 뒤로 밀어 넘어뜨리는 이민단속 요원들을 제지하다가 몸싸움에 휘말린 뒤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인다.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드롭 사이트 뉴스'도 2분 50초 분량의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 따르면 프레티는 연방 요원에 밀려 쓰러진 한 여성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 순간 다른 요원들이 접근해서 프레티를 뒤에서 붙잡은 뒤 길바닥에 쓰러뜨려 제압했다.
프레티 주변에는 최소 5명의 요원들이 몰려 있었고, 당시 요원 중 한 명은 프레티에게 처음 접근했을 때는 빈손이었다가 몸싸움 와중에 총 한 자루를 집어 드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연방 요원이 이미 프레티가 합법적으로 소지했던 총을 회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후 다른 요원이 총으로 프레티의 등을 조준하고 근접 거리에서 발사를 시작했다. 미 언론들은 5초간 최소 10발이 발사됐다고 분석했다.
사망자 유족 "정부 역겨운 거짓말 개탄스럽다"
부모인 마이클과 수전 프레티는 아들의 죽은 이후 성명을 내고 "알렉스는 가족과 친구들을 깊이 사랑했고, 간호사로서 자신이 돌보던 미국 참전용사들을 진심으로 아꼈다"며 "그는 이 세상에 변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안타깝게도 자기 영향력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 아들에 대해 퍼뜨린 역겨운 거짓말은 개탄스럽다"고 울분을 토했다.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프레티가 교통·주차 위반을 한 적은 있지만 범죄 전력이 없다고 전했다.
브라이언 오하라 미니애폴리스 경찰국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프레티는 합법적 총기 보유자"라며 "주 법에 따라 공공장소에 권총을 은닉하고 소지하고 다닐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기반인 공화당은 물론, 전통적 보수층인 총기소지 옹호단체들도 이번 총격 사건과 이후 연방정부가 보여준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토마스 매시 하원의원(켄터키)은 엑스(옛 트위터)에 "총기를 소지하는 것은 사형 선고가 아니라 헌법으로 보호받는 신이 부여한 권리"라며 "만약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법 집행이나 정부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미국총기소유자협회(Gun Owners of America)도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접근해온 총기 휴대 허가증 소지자를 연방 요원이 쏘는 게 법적으로 정당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ICE 100억 달러, DHS 644억 달러 예산 '발목'…연방정부 셧다운 가능성
이번 총격 사망 사건으로 정치권이 달아오르면서 지난해 10~11월에 이어, 이달 말 연방정부 셧다운 재발 가능성도 커졌다.
NYT는 이번 총격 사건으로 그동안 연방의회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협상을 벌여오던 정부 세출 승인 6개 법안 패키지 통과가 불투명해졌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패키지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지출 100억 달러(14조5천억원)를 포함해 국토안보부(DHS) 지출 644억 달러(93조1천400억 원)가 반영된 점을 들어 통과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DHS에 돈을 대주는 법안이 포함된다면 세출승인 법안을 표결에 부치는 데 필요한 표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네소타 사태는 끔찍한 일이다. 미국의 어떤 도시에서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