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7천억 달러를 돌파하며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성적표를 찬찬히 뜯어보면 '반도체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져 걱정거리도 적지 않다.
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연간 수출액은 전년보다 3.8% 증가한 7097억 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7천억 달러를 돌파하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조업일수가 해마다 다른 점을 감안해 하루 평균 수출액을 살펴봐도 일평균 26억4천만 달러로, 역시 역대 최고 기록이다. 또 하루 평균 기준 증가폭은 4.6%여서 연간 증가율 3.8%보다 컸다.
산업통상부 제공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반도체가 다 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관련 서버 수요가 늘고, 메모리 가격도 덩달아 크게 오르면서 반도체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은 전년 대비 22.2% 증가한 1733억 9천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전년에 이미 43.9%나 급증하며 역대 최대 수출액을 기록했는데, 지난해에도 20% 이상 큰 폭으로 증가하며 그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24.4%에 달해 전체 수출액이 증가하는 데 품목 중 가장 기여도가 컸다. 특히 전체 수출액 증가분이 전년 대비 260억9천만 달러인 데 반도체 수출 증가분은 314억7천만 달러로, 반도체 증가분이 전체 증가분의 약 120.6%에 이른다.
이러한 추세는 지난해 하반기로 접어들며 더욱 강해졌다. 지난해 12월 반도체 수출은 43.2% 증가하며 월 기준 역대 최대인 약 208억 달러를 기록했다. 또 지난 한해를 통틀어 6월·8월·9월·11월에 이어 다섯 차례나 월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등 지난해 하반기 들어 꾸준한 상승 흐름을 보였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품목들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순수출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는 얘기다.
15대 주요 품목의 2025년 수출 실적(억 달러, %). 산업통상부 제공실제로 한국의 15대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반도체를 포함해 자동차·선박·무선통신기기·바이오헬스·컴퓨터 등 6개 품목은 수출이 증가했지만, 나머지 9개 품목은 감소했다.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경제 성적표를 반도체 호황이 상쇄한 '반도체 착시'가 발생한 셈이다.
특히 감소한 9개 품목 중, 수출액이 100억 달러를 넘는 '덩치 큰' 품목들의 면면을 보면 일반기계(469억1천만 달러, -8.3%), 석유제품(수출액 454억8천만 달러, 감소율 -9.6%), 석유화학(425억1천만 달러, -11.4%), 철강(303억 달러, -9.0%), 자동차부품(212억 달러, -5.9%), 디스플레이(169억7천만 달러, -9.4%) 등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효자 품목들이 포진해 있다. 이밖에 섬유(96억8천만 달러, -7.5%)와 가전(72억7천만 달러, -8.8%), 이차전지(72억 3천만달러, -11.9%)도 부진했다.
특히 석유화학 수출액은 11.4% 줄어 두 자릿수 감소폭을 기록했다. 산업부는 이처럼 석유제품, 석유화학이 부진한 배경으로 '유가 하락 및 공급 증가에 따른 단가 하락'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원재료인 원유 값이 떨어지면 해당 업종이 더 큰 이익을 거둘 것 같지만, 관련 업계의 시장 가격대가 전반적으로 떨어지니 자연히 절대적인 수출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후발주자인 중국 등의 덤핑 공세로 과잉 공급이 심해져 단가가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해당 업계는 고사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장벽도 여전히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일반기계·철강·자동차부품 등이 미 관세 조치에 직격탄을 맞은 업종으로 꼽힌다.
물론 모든 품목이 탄탄대로만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2024년 12.3 내란에 따른 투자 리스크와 트럼프 행정부의 막무가내 상호 관세로 우려가 치솟았던 데 비하면 이들 품목의 감소세를 '선방'한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전기기기·화장품·농수산식품 등도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한 점도 눈에 띈다.
다만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큰 점은 구조적 취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인공지능(AI) 투자가 둔화되거나 메모리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글로벌 경기·통상 환경에 변화가 발생하면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최근 AI 투자가 워낙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버블' 조정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언제든 열려 있다.
게다가 미국의 관세 장벽 등으로 경색된 글로벌 무역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미 하락세를 보이는 품목들의 충격은 더 확대될 수 있다. 이차전지 등의 발목을 잡은 전기자동차 수요 둔화나 중국 배터리·소재 업체의 공세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어서, 당분간 반도체의 수출 독주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