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12.30. 서울중앙지법 윤석열 등 재판 중 김용현 증인신문 |
"'아 장관님. 나도 인간인데 왜 편하게 대충 넘어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적당히 야당하고 타협해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그러면 공격도 안 받고, 적당히 편하게 대통령 하면서 즐길 거 즐기고 끝나고 나서도 편안하게 노후생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소 결연한 의지를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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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이틀 전인 2024년 12월 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란죄 공범들의 사건이 병합돼 한 법정에 모인 전날(30일) 재판에서 증인석에 앉은 김용현은 피고인석의 윤석열을 앞에 두고 연신 추켜세웠다. 그러나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는 것'이 대통령인 그가 했어야 할 정치임에도 윤석열은 무엇도 내어주기 싫었는지 계엄을 택했다.
대한민국이 내란 청산을 위해 분주했던 지난 1년간 윤석열만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듯하다. 비상계엄과 관련한 1심 재판들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상황에서도 그는 '대통령임에도 권력을 침탈당한 피해자'라는 취지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상 초유 '체포 거부'와 법원 폭동
올해 1월 1일은 사상 초유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를 두고 시끄러웠다. 전날(2024년 12월 31일)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대해 윤석열 측 법률대리인단은 "불법무효 체포영장", "(사법부 결정도) 망국적 비상상황"이라며 법원까지 공격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해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도 처음이지만, 한 평생을 법률가로 살아온 그가 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도 충격을 줬다. 자원이 부족한 '잡범'이라면 도주하고 말테지만 대통령인 그는 경호처를 방패삼아 관저를 요새화 하고 사법부 결정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1월 15일 두 번째 체포영장 집행 전 윤석열이 남긴 말은 지지자들의 사법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닷새 후 구속영장이 발부된 날 밤엔 서울서부지법에 폭동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이달 26일 체포방해 등 혐의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대통령 경호는 아무리 지나쳐도 과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정당화 했다. 심지어
"경호원들이 대통령 쫓겨났고 상황이 바뀌어서 조사 받으면서 우리가 그건 불만이 많았다고 얘기하면 그게 직권남용이 될 만한 의무 없는 경호 과정인 것이냐"고 따졌다. 자신이 권력을 잃자 경호원들의 말이 바뀐 것일 뿐이란 인식이다.
"호수 위 달그림자" 망언의 끝…대통령직 파면
내(대통령)가 할 수 있고, 할 만 해서 한 일.
12·3 비상계엄에 대해 지난 1년간 윤석열이 되풀이한 주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지난 26일 최후진술에서도 그는
"국가긴급권 행사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의 어떤 독점적 배타적 헌법상 권한으로 돼 있다"고 주장한다. 또
"국가비상사태를 발생시킨 원인이 국회, 거대 야당이기 때문에 …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계엄을 내란으로 보는 건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를 쫓는 것"(2025.2.4 탄핵심판 진술)이거나
"내란 프레임과 탄핵공작"(2025.2.6.탄핵심판 진술),
"딱 코메디 같은 얘기"(2025.12.26. 체포방해 등 재판 최후진술)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12·3 비상계엄은 위헌·위법하다고 판단하고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지난 4월 헌재는 "피청구인(윤석열)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라며 이는 계엄법이 정한 계엄 선포의 목적에 해당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헌재는 계엄이 선포에 그치지 않고 군경을 동원해 국회의 권한행사를 방해하는 등 헌법·법률 위반행위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경고성·호소용 계엄이라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모든 탄핵 소추사유가 인정된 파면 결정문이 나온 후에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최후진술에서 그는
"(계엄이 아니라) 헌법개정이라든가 법률개정, 위헌정당해산청구 같은 걸 하는 게 맞지 않냐고 (헌재 결정문에서) 하는데 저는 그게 과연 가능한가 의문"이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조율과 협상이 필요한 정상적 절차들로는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여전히 윤석열의 생각이다.
"저도 참 많이 인내해" 새어나온 자백
윤석열 전 대통령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의 결심 공판에서 최후 진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이 그린 '정상화'는 제왕적 대통령의 군림일 것이다. 내란특검은 6개월간 수사를 마친 후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 동기를 '권력 독점'으로 규정했다. 무력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기간 독점·유지하기 위해 군을 통해 사법권을, 비상입법기구로 입법권을 장악하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은 완강히 부인해 왔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후 입법 폭거와 탄핵 남발, 예산 삭감 등으로 국정운영을 마비시키면서 계엄이라는 수단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논리다.
그러나 특검은 총선보다 6개월 앞선 2023년 10월부터 윤석열이 비상계엄 시기를 검토했다는 진술과 정황 증거를 확보했다. 이번 최후진술에서 윤석열 본인의 입으로 일말의 진실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에 충실하게 가려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이) 사실은 취임 초부터 시작했습니다. … 그래서 저도 참 많이 인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취임 초부터 그는 '부당하게 방해받는다'고 느꼈고, 인내는 길진 않았던 듯하다. 특검은 2022년 7~8월경 '대통령이 총선 이후 계엄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는 사정기관 고위직 출신의 진술을 확보했다. 대통령 취임 후 채 석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했는데도 그냥 막 바로 '내란몰이'하면서 대통령 관저에 밀고 들어오는 걸 보셨지 않나. 얼마나 대통령을 가볍게 생각하면 이렇게 하겠나"라며 '제왕적 대통령'은 없다는 말은 오히려 그가 얼마나 제왕적 대통령을 갈망했는지 방증한다.
그러나 애초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권력 독점은 허용되지 않는다. 국민은 그에게 그런 권력을 준 적 없다. 권력 금단을 호소하는 그가 내년 초 피고인석에서 마주하게 될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