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 후속 협의에 참석한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오른쪽)과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한미 팩트시트 후속협의를 통해 핵추진잠수함 확보에 속도를 내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700톤급 핵추진잠수함 건조현장을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중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고, 일본은 이를 명분삼아 자신들도 핵잠수함을 보유해야 한다는 여론전에 한창이다. 동북아 주요국이 직간접적으로 '핵잠 경쟁'에 돌입하면서 내달 초로 예상되는 한중·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읽힌다.
'완성 형태' 핵잠 깜짝 공개한 北…핵보유국 지위 공고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부인 리설주, 딸 주애와 함께 8700t급 '핵동력 전략유도탄 잠수함' 건조 사업을 현지지도하고 해군의 핵무장화를 계속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은 25일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 건조 현장을 전격 공개했다. 한미가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위한 별도의 협정을 체결한다고 발표한 다음 날이다. 우리 정부가 핵잠수함 도입을 위해 미국과의 협정 체결을 검토하는 초기단계인 것과 비교하면, 북한이 공개한 핵잠은 외형이 거의 완성된 형태로 보인다.
북한은 한미의 핵잠 협력을 핵무기 고도화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서울의 청탁으로 워싱턴과 합의된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 계획은 조선반도 지역의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라며 "우리 국가의 안전과 해상 주권을 침해하는 공격적 행위로, 반드시 대응해야 할 안전위협으로 간주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내년 북미대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에 대해 '더 이상 비핵화는 없고 이제는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 대우하라'는 압박 메시지"라며 "지상의 핵시설이 파괴되더라도 수중에서 보복 타격이 가능한 능력을 과시해 북한의 핵억제력이 이제 '불가역적' 단계에 진입했음을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韓 핵추진 잠수함 두고 '동상이몽' 동북아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을 대하는 일본의 반응은 더 노골적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24일 언론인터뷰를 통해 핵잠수함 도입 가능성에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억지력·대처력 향상을 위한 정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핵잠 도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한 건 처음이다.
일본에선 '비핵 3원칙'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에서 벗어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핵 보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중국 또한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으며 한미를 견제하고 있다. 지난 22일 중국 관영매체는 군사 전문가를 내세워 한국은 핵잠수함을 운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군사 전문가 쑹중핑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한국이 핵잠수함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협하고 소위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정부, 北 핵잠에 입장 안 내…"韓 자강력은 역내 안정 평형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정부가 내달 초로 추진하고 있는 한중·한일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미 핵잠수함 협력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핵잠수함 공개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내년도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를 천명한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다만 상대국들에도 한중·한일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핵잠이 '쟁점현안'으로 부상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중일갈등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전선이 더 넓어지는 건 모두가 원하지 않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 도입 목적이 북핵 억제에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전봉근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동북아 군비경쟁을 촉진한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이 핵잠을 보유하려는 이유는 북핵에 대한 방어와 역내 안정성 유지"라며 "동북아의 지리적, 지정학적 중심에 놓인 한국의 자강력은 역내의 안정에 기여하는 평형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