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 오학동의 한 농경지. 버섯을 재배하는 마야의 일터. 김수진 기자"가족 본 지 6개월 넘었어요. 보고 싶죠. 하지만 돈 벌어야 해요. 버섯을 매일 따지 않으면 안 돼요."2026년 최장 5일의 긴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1일, 경기도 여주시 오학동의 한 농로. 14일부터 18일까지 이어지는 연휴 기간에 인근은 한산하지만, 이곳의 비닐하우스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가동 중이다.
그 안에는 네팔에서 온 여성 농업노동자 마야(30세, 가명)씨가 있다. 한국에 온 지 2년 반. 그에게 이번 설 연휴도 달력에만 존재하는 '빨간날'일 뿐이다. 마야씨는 연휴 내내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버섯 재배지를 지켜야 한다.
"쉬는 날요? 한 달에 딱 2번…"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의 멈춘 시계
마야씨가 일하는 곳은 버섯 농가에는 그를 포함한 5명의 이주노동자가 이번 설 연휴 5일 내내 출근 도장을 찍는다. 마야씨는 "한 달에 쉬는 날은 일요일 중 딱 두 번뿐인데, 이번 설에는 휴일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버섯은 생육 특성상 온도와 재배 시기에 매우 예민해 매일 관리하고 채취해야 한다. 발이 시기에는 하루에 크기가 2배씩 자라기도 하고, 수확 적기를 단 하루만 놓쳐도 포자가 터져 상품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다. 명절이라고 해서 마야씨의 노동이 멈출 수 없는 이유다.
그의 보금자리는 버섯 농가 바로 옆, 어두운 차광막을 뒤집어쓴 비닐하우스 아래 컨테이너다. 5년 전 영하 18도의 한파 속에 숨진 속헹씨의 숙소와 판박이다. 마야씨는 고향인 네팔에 다녀온 지 6개월이 넘었다. 가족이 보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리움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비닐하우스 안에서 마야 씨는 얼어붙은 손마디를 비비며 버섯 상자를 옮겼다.
마야씨가 버섯을 딸 때, 인근 농가의 또 다른 노동자들은 새벽 3시부터 딸기를 딴다. 딸기는 낮에 따면 금방 무르기 때문에 신선도를 위해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작업해야 한다. 겨울철 농번기인 깻잎과 딸기 농가 노동자들의 손마디는 빨갛게 부어터진 동상 자국이 선명하다. 양말조차 신지 않는 더운 나라에서 온 이들은 한국의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생전 처음 겪는 동상과 싸우며 명절을 보낸다.
법이 허락한 '무한 노동'…근로기준법의 인권 사각지대
경기도 여주 오학동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모인 농장 바로 옆 불법 숙소에 신발이 놓여있다. 김수진 기자마야씨와 같은 농업 노동자들이 명절에도 쉬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법의 공백에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63조는 토지의 경작·재배 등 농림 업종 노동자들에게 근로 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반적인 제조업 노동자와 달리, 이들에겐 주 52시간제나 유급 주휴일이 의무가 아니다. 설령 명절과 같은 공휴일에 일하더라도 휴일 가산 수당을 청구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소장은 "농업 노동자들은 제조업 노동자와 비교해 근무 일수는 많지만, 임금은 훨씬 적은 구조에 놓여 있다"며 "잔업 수당조차 발생하지 않는 이 법적 예외 때문에 노동자들을 토지에 묶여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농장주가 베트남으로 일주일씩 여행을 떠나면서 노동자 한 명에게 농장을 통째로 맡기고 생산량만 체크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최근 김 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한 노동자의 사례는 안타까웠다. 이천의 한 농가에서 일하는 한 이주노동자는 전 농장에서 받지 못한 임금 2천만 원을 찾기 위해 법원에 가야 했다. 하지만 현 농장주는 "이번 달 휴가 이틀을 이미 다 썼으니, 법원에 갈 시간을 줄 수 없다"며 가로막았다. 베트남으로 열흘간 여행을 떠난 사장 대신 혼자 밭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노동자가 사장에게 휴일을 애원해도 '안 된다, 못 간다'는 답만 돌아오는 게 현실"이라며 "법적 보호가 없는 이들은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스타필드 보러 가는 것이 꿈" 이주노동자들의 소박한 하루
이주노동자의 옷이 걸린 불법 비닐하우스 숙소 옆 풍경. 김수진 기자
모든 이주노동자의 설날이 비닐하우스에 갇힌 것은 아니다. 그나마 건설업·제조업에 종사하거나 실직 상태인 이들은 연휴를 맞아 소박한 나들이를 계획하기도 한다.
이들은 수원 스타필드 같은 대형 쇼핑몰을 찾아 따뜻한 실내에서 볼거리를 즐기거나,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고향 가족에게 보낼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휴식조차 농촌 비닐하우스에 묶인 마야 씨 같은 노동자들에겐 사치에 가깝다.
김 소장은 "한국 형들은 다 쉬는데 우리는 왜 일해야 하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노동자들의 전화가 때때로 걸려 온다"며 "설날 중 하루, 이틀이라도 쉬면서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가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라고 전했다.
우리가 떡국을 나누며 정을 주고받는 사이, 법이 외면한 이주노동자들은 '돈을 벌어야하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인 채 명절에도 평소와 똑같은 생존의 하루를 견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