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법 동부지원. 송호재 기자 부산의 한 중견 건설사 사주 일가가 수십억 원대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 2년 만에 1심 선고가 마무리됐다. 법원은 비자금·횡령 혐의 일부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검찰의 압수수색 위법성을 이유로 뇌물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이동기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횡령)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건설사 대표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25억 원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별건으로 기소된 횡령 사건에 대해서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함께 기소된 차남 B씨와 전직 전무는 각각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전직 부장에게는 무죄가 내려졌다. 회사 법인에는 벌금 5억 원이 선고됐다.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A씨 등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하도급 업체와 공사대금을 부풀려 계약한 뒤 잔금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모두 82억 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일부를 아파트 구입과 B씨의 허위 급여 지급 등에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씨는 2022년 건설사 자금 50억 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13억 원 상당의 조세 포탈에 관여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두 형제의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C씨에게 현금 25억 원이 입금됐고 A씨 등 가족에게 현금 13억 원이 보내진 게 비자금의 일부로 판단된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비자금 대부분이 이미 사망한 전 회장이 취득한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들이 횡령액 상당 부분을 변제해 피해회복이 이뤄진 점을 양형 이유로 고려했다"면서 "다만 A씨가 불법 행위에 충분히 역할을 했다고 보이고 부당이익을 누린 점 등을 고려하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불법 로비 혐의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죄가 선고됐다. A씨와 건설사 임원, 은행 직원, 지자체 공무원 등은 백화점 상품권 등 6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주고받고 대가로 편의를 제공하는 등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법원은 검찰이 확보한 압수물 대부분을 '위법수집증거'라고 보고 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위법하게 수집된 자료를 토대로 한 관련자 진술 역시 2차 증거로서 효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범죄사실은 비자금·횡령이었음에도 관련성 없는 뇌물공여·수수 자료를 별도의 영장 없이 확보했다"며 "객관적·인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만큼 증거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해당 건설사 사주 일가가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서로의 비리를 폭로하고 고소·고발이 이어지면서 드러났다. 모두 28명이 재판에 넘겨졌으며 이날 선고로 관련 1심 재판은 사실상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