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포옛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1 전북 현대 지휘봉을 잡자마자 더블(2관왕)을 달성한 거스 포옛 감독이 1년 만에 팀을 떠나며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지난 2024시즌 전북은 승강 플레이오프로 추락해 강등 위기까지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선임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출신의 명장 포옛 감독은 단숨에 팀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전북은 포옛 감독의 지휘 아래 K리그1 통산 10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고, 코리아컵까지 제패하며 이번 시즌 더블을 이뤘다. 포옛 감독은 사상 처음으로 부임 첫 시즌에 더블을 달성한 사령탑이 됐다.
하지만 포옛 감독과 전북의 동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전북 구단은 지난 8일 "2025시즌 K리그1과 코리아컵 우승의 역사를 쓴 포옛 감독이 짧지만, 강렬했던 한 시즌을 마치고 지휘봉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포옛 감독은 최근 타노스 수석코치가 인종차별 논란 끝에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것이 팀을 떠나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라고 털어놨다. 그는 "내 코치진을 건드리는 건 나를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나의 사단이 한국에 머무르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대전 경기 도중 김우성 주심과 전북 타노스 코치가 언쟁을 벌이고 있다. 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타노스 코치는 지난달 8일 대전하나시티즌전 도중 후반 추가시간 주심을 향해 판정에 항의하며 두 눈에 양 검지 손가락을 대는 동작을 했다. 이를 본 주심은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연맹 상벌위원회 역시 타노스 코치의 행동이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출장정지 5경기와 제재금 2000만 원의 중징계를 내렸다.
전북 구단은 타노스 코치의 행위에 대해 "인종차별 의도가 아니라 '당신도 보지 않았느냐'라는 의미"라고 해명하며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타노스 코치는 구단에 사의를 표하고 팀을 떠났다.
상벌위는 타노스 코치의 행위가 이른바 '슬랜트아이(slant-eye)'로 널리 알려진 동양인 비하 제스처와 동일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인종차별로 인한 모욕적 감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상벌위의 주장대로 당사자가 인종차별이라고 느끼면, 인종차별이 맞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상벌위가 제시한 "특정 행위에 대한 평가는 그 행위자가 주장하는 본인의 의도보다는 외부에 표출된 행위가 보편적으로 갖는 의미를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위배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타노스 코치의 행위는 실제로 유럽 무대에서도 판정에 항의할 때 흔히 쓰이는 제스처이기 때문에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이에 전북 서포터스 MGB는 "정당한 항의를 인종차별로 몰아간 중징계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 입장하는 김우성 심판. 연합뉴스
심판을 향한 불신도 화를 키웠다.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 감사에서 K리그 오심이 지난해 28건에서 올해 79건으로 늘었으며, K리그1의 경우엔 8건에서 34건으로 증가했다는 자료가 공개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타노스 코치의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지자 심판은 오심을 뒤로하고 권위만 내세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명확한 판정으로 심판을 향한 불신부터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결국 이번 사태는 포옛 감독의 거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전북 구단은 "포옛 감독은 전술, 훈련 등 팀 운영의 핵심 역할을 맡으며 16년 동안 함께한 타노스 코치의 사임으로 심리적 위축과 부담을 느꼈다"며 "사단 체제로 운영하며 자신의 지도 시스템을 구축했던 포옛 감독은 조직 균열로 인한 지도력의 안정성 저하 등을 우려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는 심판의 권위의식에 치여 명장을 잃었고, 전북의 영광 뒤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축구는 심판 판정의 권위가 아닌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