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홍콩 북부 타이포지역의 '왕 푹 코트' 아파트 화재참사가 전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화재로 인한 피해규모가 엄청난데다 불씨가 아파트단지 전체를 에워싸고 있던 대나무 비계를 타고 삽시간에 단지 전체로 확산된 것도 보기드문 광경이었다.
이번 참사로 최소 120여명의 아파트 주민이 숨지고 2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피해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불이 완전히 꺼지고 내부수색이 시작되면 피해규모가 눈덩이 처럼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작은 불씨가 홍콩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이어진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홍콩 소방당국은 노후된 아파트 보수공사를 위해 건물외벽을 감싸듯 설치된 비계와 아파트 내외부에 적재된 잡동사니가 불쏘시개가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합뉴스이 가운데서도 주목을 끄는 부분은 아파트단지의 전체적인 구조다. 국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된 현장사진은 얼핏보기에도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밀도 타원형구조'로 화재 등 재난에 취약한 구조다. 화재 발생 3-4시간만에 7개동으로 불이 번진 것은 건물이 밀집돼 있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다.
영국령 시절 선진경제권으로 진입한 홍콩은 면적 대비 거주인구수가 세계 어느 곳보다 많았고 이것이 밀집형 건축물 배치가 보편화된 이유가 됐다. 홍콩은 총 육지면적이 1110㎢(서울의 1.8배), 인구는 750여만명으로 인구밀도가 세계 4위이다.
불이 난 왕 푹 코트 아파트는 1983년 건축됐는데, 지어질 당시 적용된 건축물 이격거리는 아주 협소했다. 홍콩 건축법 상(Code of Practice for Fire Safety in Buildings 2011) '비보호 개구부 허용 거리(최소이격거리)'는 1.8~6미터를 초과하면 된다. 즉, 이 거리에서 창문 등에 별도의 내화 보호 장치 없이 비보호 개구부(Unprotected Opening)를 허용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오늘날 홍콩의 밀집형 도시화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통로에 쌓인 각종 불쏘시개, 대나무 비계, 강하게 불어든 바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참사지만 구조적인 원인으로는 역시 아파트의 동간거리가 너무 좁게 설계됐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렵다.
홍콩 화재는 이런 점에서 '아파트형 주거문화'가 보편화된 한국사회에도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서울은 건축 40년이 지나 노후화된 아파트마다 재건축에 나서고 있고 너나없이 고밀도개발을 선호한다. 아파트를 한채라도 더 지어야 재건축 비용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아파트의 왜관은 갈수록 높아지고 건물간 간격은 좁아지는 추세다.
연합뉴스특히 한강 주변의 인기지역은 50층이 넘는 초고층 개발 추세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비용이 적게들고 재건축 뒤에는 높은 집값상승이 보장되는 눈앞의 이익이지만 1세대, 2세대가 지난 뒤 초고층 아파트들이 노후화된 뒤를 생각하면 우려스럽다.
재건축의 실익이 사라져 재건축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노후화된 아파트의 주거 안정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100층에 이르는 고층아파트는 아무래도 중저층 아파트 대비 재난대피가 쉽지 않다. 행정기관들은 서울의 주거부족과 집값 상승 때문에 한강변 고밀도 개발을 계속 허용해주고 있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한다면 허가신청이 들어오는대로 다 받아줄 일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