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가 2019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던 당시 모습. 연합뉴스'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진 이희진씨의 주식 사기 피해자들이 이씨 측과 관련 방송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으로 5년 만에 일부 승소 판결은 받았지만, 일부 돈을 뱉어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오랜 기간 법정 다툼으로 힘겹게 작게나마 피해가 회복되나 싶었지만, 사실상 '빈손'이 돼버린 상황이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 8월 28일 주식 사기 피해자 37명이 이희진씨와 이씨의 동생, 이씨가 자주 출연했던 A방송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피해자들은 2020년 12월 해당 소송을 시작했다. 5년이 거의 다 돼서야 최종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이씨 형제와 이들이 실질적으로 운영했던 B법인에 대해서 4억 7400만 원 가량을 배상책임 금액으로 인정했다. 또, 이들을 패널로 출연시킨 A방송사에도 피해자들에게 1억 41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당시 A방송사는 피해자들이 이씨의 영향을 받아 매수한 비상장주식 대부분이 나중에 실제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됐으며 매수 추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실제 사실관계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또 방송 내용 상당 부분이 장래 전망을 제시하는 것에 불과한 점 등을 들어 이씨가 허위 또는 객관적 근거가 없는 투자 정보를 제공해 피해자들을 기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A방송사의 유료회원으로 가입해 이씨의 증권방송을 시청했고, 가입 기간 종료 후라도 해당 방송을 통해 주식을 매수하게 된 점, 해당 방송사의 홈페이지에 유료와 무료 회원이 모두 가입 가능한 '증권방송 이희진 카페'를 마련해줘 유료방송을 동시에 송출해 가입 기간 외에도 일부 서비스 이용할 수 있었다는 점, 이씨와 체결한 계약에 따라 이씨를 홍보할 의무가 있었고 이씨를 베스트파트너 8인으로 선정했던 점 등의 사정을 참작해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 A방송사의 책임이 있다고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봤다.
이에 37명 중 35명의 피해자들은 A방송사로부터 1인당 평균 약 4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최근 배상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승소의 기쁨도 잠시, 청구서가 같이 날아들었다. 최근 A방송사는 이들을 상대로 소송비용 계산서를 보냈다. 피해자들을 상대로 약 4615만 원의 소송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하면서도 피해자들이 A방송사와의 소송과 관련해 소송비용 95%를 부담하라고 판시했다. 민사소송법상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예외적으로 승소한 당사자에게도 소송 비용 일부를 부담하게 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통상적으로 일부 승소 판결 시에는 책임이 인정된 비율에 따라 소송비용을 분담하도록 산정하지만, 이 역시 판사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판결문에 소송 비용 분담 비율을 산정한 기준이 설명돼 있지 않다. A방송사는 소송 당시 굴지의 대형 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와중에 피해자들은 여전히 이희진씨 측의 배상을 받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지 4개월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희진씨 측 법률대리인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씨가 현재 피해자들에게 배상 의사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이씨가 배상을 안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판결을 집행해서 실질적으로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제도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이씨에 직접 손해 배상할 의사가 있는지 등을 물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씨가 피해자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특정된 시기는 2014년 7월에서 2016년 8월. 피해자들은 피해액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돈을 10년 만에 배상 받을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일부는 소송 비용 등으로 나갈 처지에 놓였다.
소송 당사자인 이희진피해자모임 박봉준 대표는 "피해자들은 이희진에 사기를 당해 지난 10년동안 엄청난 경제적인 고통을 받고 있었다"라며 "이씨를 출연시킨 A방송사와 재판만 30여 차례 이르는 치열한 공방 끝에 판결을 받았는데 이씨한테는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변호사비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 비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만일 이씨 측이 배상을 지연하게 된다면, 이 또한 돈을 받기 위한 지루한 절차에 돌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재 피해자들은 강제 집행 절차 착수를 위한 재산 명시 신청을 한 상태이며, 이씨의 차명 재산에 대한 사해행위 취소 소송 제기도 검토하고 있다. 법무법인 민 방민우 변호사는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소송은 승소했기에 변호사 성공 보수 등으로 비용을 추가로 지불했겠지만, 비율에 따라 소송 비용을 또다시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며 "민사 소송은 경우에 따라 상대측 변호사 비용을 물어주도록 구조가 돼 있기 때문에 소가 산정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