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월 2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기재부 기자실에서 열린 외환시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하늘 높은 줄 모르고 환율이 치솟는 가운데, 정부가 외환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을 새롭게 운용할 '뉴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국민들의 쌈짓돈을 끌어다 외환 소방수로 동원한다는 비판 여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국민연금이 가져오는 외환 변동성을 눌러야 장기적인 연금 수익성도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민연금이 외환 시장에서 '최대 플레이어'라고 강조했다. 이번 환율 상승 국면을 부른 가장 큰 원인이 국민연금에 있다고 지목한 셈이다.
실제로 지난 8월 기준 국민연금 전체자산은 1322조 원으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2292조 원의 절반을 넘어 전 세계 연기금 중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이러한 국민연금 자산 가운데 해외주식에 투자한 금액이 486조 4천억 원(36.8%)에 달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여기에 해외채권 투자분(94조 3천억 원, 7.1%) 등을 합치면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액은 달러 기준으로는 5천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돼, 정부의 외환보유고 4288억 달러를 한참 앞지른다.
더 큰 문제는 증가속도다. 지난해 연말 기준 국민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해외주식은 431조 원, 해외채권은 88조 3천억 원 투자됐던 것과 비교하면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수십조 원의 뭉칫돈이 단기간에 해외로 흘러갔다.
더구나 모수개혁으로 보험료율이 9%에서 13%까지 인상되면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 자산 규모가 2053년쯤 최대 3600조 원을 넘어설 전망으로, 현재와 같은 비율로 투자한다면 해외로 빠져가나는 돈이 그만큼 불어날 수 있다.
연합뉴스물론 국민연금이든, 서학개미든 해외로 투자되는 돈이 영영 사라지는 돈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수익을 실현하면 국내로 돌아올 돈이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꾸준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외화를 벌어들인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정부는 국민연금이 단기간에 외환시장의 '최대 플레이어'가 됐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한다. 너무 짧은 기간에 국민연금의 몸집이 불고 해외 투자도 확대된 탓에 외환시장 변동성을 키울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구 부총리는 "외환시장 규모에 비해 큰 연금의 해외투자가 단기에 집중되면서 물가 상승, 구매력 약화에 따른 실질소득 저하로 이어질 경우 지금 당장 국민 경제와 민생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수준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또 수급 인원이 더 많아지는 약 10년 뒤부터는 국민연금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국민에게 돌려주면서 반드시 원화로 환전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환율을 들썩일 정도로 규모가 커진 국민연금이 원화로 받은 보험료로 해외 투자를 확대할수록 달러가 빠져나가 잔뜩 오른 환율 아래 해외 투자를 하게 된다. 반대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해외 자산을 팔아 환전하면 원화 가치가 오르며 연금 수익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쌀 때 사서 싸게 파는 격이니,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국민연금이 과도하게 외환 변동성을 키우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구 부총리는 "뉴 프레임워크 논의는 환율 상승에 대한 일시적 방편으로 연금을 동원하기 위한 목적이 전혀 아니다"라며 "기금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장기 시계에서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단순히 당장 연금 재원을 끌어다 외환 시장의 급한 불을 끄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중장기적 대안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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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만큼 이날 구 부총리는 간담회에서 당장 환율시장에 방안을 내놓거나 개입하기보다는, 정부의 행보를 해명하는 데 집중했다. 앞서 지난 24일 기재부와 한국은행,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이 4자 협의체를 구성해 국민연금의 해외투자와 그 영향을 점검한 데 대해 '국민들이 모은 돈을 환율 방어에 동원한다'는 비판이 일자, 관련 해명에 주력한 것이다.
다만 그동안 거론됐던 '전략적 환헤지' 조정 등 구체적인 방안은 "복지부 장관이 주재하는 기금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라고 말을 아끼면서도 "기재부는 기금 운영위원회의 일원으로 국민연금 기금의 안정성 유동성 그리고 수익성 공공성이 조화롭게 고려될 수 있도록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수출 기업에 환전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서학 개미들의 투자를 국내로 돌릴 방안 등에 대해서도 "현재는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여건이 되면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불가피하다면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얼마든지 추진할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관건은 연금 수익성과 공공성이 과연 함께 갈 수 있느냐 여부다. 그간 정부는 환율이 급격히 오를 때마다 국민연금을 구원투수로 등판시키고는 했다. 비록 구 부총리가 이날 '동원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당장 올 연초에도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를 통해 달러 매도 물량을 시장에 풀면서 환율을 끌어내린 바 있다.
더구나 중장기적 과제인 '뉴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으로는 당장 환율 시장이 안정을 찾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당장 이날 장중 한때 1457원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구 부총리가 구체적인 방안을 거론하지 않자 다시 올라서서 1465.6원으로 장을 마쳤다.
환율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뉴 프레임워크'를 통해 해외투자 비중을 축소하는 작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애초 국내증시 시가총액이 해외 시장의 1% 내외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현재 포트폴리오에서 해외투자 비중을 줄이기도 쉽지 않고, 수익률도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환헤지 비율 상향 조정 등 간접적 방식이 계속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