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 과일을 지역 상가에 전달하기 위해 준비한 모습. 최화랑 기자추수감사주일이 지난 18일 화요일, 전북 전주 효자동교회 로비에 들어서자, 김장김치의 진한 향과 정갈하게 포장된 과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교인들이 함께 담근 김치와 강단을 장식했던 과일들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목적지는 예상과 달랐다. 교회 문 앞이 아닌, 동네 상가였다.
진영훈 목사와 교인들이 손에 든 것은 화려한 전도지도, 교회 홍보 팸플릿도 아니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소박한 인사와 함께 건네는 김치 한 포기, 수육 한 접시가 전부였다. 선물을 받는 상인들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스쳤다.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선교는 사람을 데려오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일입니다." 진 목사의 이 말 속에는 한국 교회가 오랫동안 놓쳐온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었다. 진 목사는 단호하게 덧붙였다. "교회가 뭔가를 주고 '그러니 교회 나오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복음은 싸구려 거래가 되어버립니다."
교인들이 함께 담근 김장김치가 빨간 통에 담겨 나눔을 기다리고 있다. 최화랑 기자 이곳의 나눔에는 조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명절마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건네는 만 원짜리 선물세트에도, 평상시 동네 곳곳으로 흘러가는 40~50개의 작은 선물에도 "교회 나오세요"라는 말은 따라붙지 않는다.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주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뿐이다.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찾아왔다. 진 목사가 골목길을 걸으면 상인들이 먼저 손을 흔든다. "목사님 고맙습니다"라는 인사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어떤 가게에서는 오히려 교회에 무언가를 챙겨주기도 한다. "목사님이 누구신지 궁금했어요"라며 다가오는 이웃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데, 여러분이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냥 좋은 이웃으로 살겠습니다." 진 목사의 이 고백은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소박함을 되찾으려는 몸짓처럼 들렸다.
"무더위와 불경기 함께 잘 견뎌요"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 효자동교회 제공 효자동교회의 '선교적 교회' 실험은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대형 이벤트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사람을 끌어오려는 계산을 내려놓고, 예수의 마음으로 지역을 품는 일상의 실천이다. 추수감사절 과일 상자, 김장김치 한 포기, 보쌈 한 접시. 그 안에 담긴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진짜 복음의 얼굴이 바로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