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혁신기업과 스타트업이 자본시장에서 더 쉽게 투자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업형 벤처캐피탈(CVC)과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간 자본이 자유롭게 시장에 흘러들어갈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12일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과제' 20건을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생산적 금융'이란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수준을 넘어, 금융이 기업의 혁신과 투자, 생산 활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한경협은 이번 건의서에서 △자본시장 기반의 모험자본 확충 △산업·금융 연계 강화 △정책금융 인프라 개선 △정책금융 운영 효율화 등 네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한경협은 혁신기업과 스타트업이 자본시장을 통한 투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CVC와 BDC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CVC는 기업이 직접 벤처캐피탈을 운영해 스타트업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이지만, 외부자금 조달 비율(40%)과 부채비율(200%), 해외투자 한도(20%) 등 여러 제한 때문에 활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또 CVC가 계열사나 오너 일가가 지분을 가진 기업에 투자할 수 없도록 막혀 있어, 전략적 협력이나 시너지 투자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BDC는 비상장 혁신기업에 투자하는 상장형 펀드로, 원래는 민간 자금이 스타트업으로 유입되는 통로 역할을 기대 받았다. 하지만 이해상충 우려 때문에 증권사의 참여가 금지돼 활성화되지 못했다. 한경협은 "증권사는 이미 내부 정보 차단 장치('차이니즈 월')를 갖추고 있다"며 "운용 역량이 있는 증권사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주회사 관련 규제 완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반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50% 이상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금융사 보유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한경협은 이런 규제가 지주회사의 재무 부담을 높이고, 산업과 금융 간 협력 투자를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폐지하고, 지주회사가 여신금융사(캐피탈사 등)나 금융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경협은 정책금융 지원 체계도 기업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금융 통합 플랫폼'의 기능을 고도화 해, 기업이 보증·대출·사후관리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지능형 금융지원 체계'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기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지원 한도와 가능 여부를 자동 산출하고 행정 절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경협은 "플랫폼이 완성되면 기업이 필요할 때 신속하게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추천기관(조합·협회 등)의 검증을 거친 기업에 대해서는 평가 단계를 간소화해, 자금이 신속히 집행될 수 있도록 심사 절차를 단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생산적 금융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금융이 기업의 혁신과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산업 정책이 시장 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