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를 이불삼아 쪽잠 자는 경찰관의 모습. 전국경찰직장협의회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지난 1일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가운데, 현장에 투입된 경찰관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이 뒤늦게 공개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경찰직협)가 10일 공개한 사진에는 경찰관들이 영화관 스크린 앞이나 행사장 바닥에 모포 한 장을 깔고 쪽잠을 청하는 모습이 담겼다. 일부는 모포도 지급받지 못해 폐지 줍는 이들로부터 상자를 얻어 덮고 잠을 잤다고 한다.
낡은 모텔이나 산속 여관에 머물렀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경찰관은 언론에 "숙소 모텔 화장실이 문이 없고 통유리로 되어있다. 감방도 칸막이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경찰관들은 주차장 화단이나 야외 무대 장비에 걸터앉아 끼니를 해결했고,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는 도시락을 받지 못해 사비로 밥을 사먹거나, 추운 날씨에 찬밥을 먹었다는 증언들이 올라왔다.
영화관 스크린 앞에 모포를 깔고 단체로 잠을 청하는 경찰관들. 전국경찰직장협의회경찰청은 "경북 지역에만 하루 최대 1만 8600명이 투입됐다"며 "연초부터 숙소·급식 확보에 신경썼지만, 외국 대표단과 행사 관계 인력까지 겹쳐 경주 일대 숙박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노후 숙소를 제공한 데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직협은 1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을 노숙자로 만든 APEC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오는 12일과 14일에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도 같은 사진전을 이어간다. 세계 정상들을 위한 국제행사에 동원된 경찰관들이 정작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알리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