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변호사가 2023년 8월 광주고등법원에서 재판 직후 법정 앞에서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고영호 기자"검찰에게 조금의 배려도 못느꼈다. 검찰 조직을 정말 이해 못하겠다. 이 사건 법정에서의 검사들은 상식 밖이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얘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른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 2023년 8월 재심 재개 여부 변론 과정에서 CBS와 인터뷰를 통해 밝힌 소감이다.
광주고등법원 제2형사부가 살인과 존속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실형을 살았던 백모씨 부녀에게 28일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 수사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됐다.
박 변호사는 무죄 판결 직후 "검찰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혀 당시 초기 수사를 하며 기소했던 광주지검 순천지청이 책임지고 사죄해야 한다는 요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대한 그동안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정리했다.
2009년 사건 발생
지난 2009년 7월 6일 오전 9시 10분 순천시 황전면 주택에서 청산가리가 섞인 막걸리를 마신 주민 2명이 숨지고 2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숨진 주민 가운데는 백씨의 아내이자 딸의 어머니가 포함됐다.
순천경찰서는 전담반과 수사본부를 차리고 현상금도 내걸며 프로파일러까지 투입하는 한편 청산가리의 인터넷 구입 루트를 확인하기 위해 택배회사까지 탐문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백씨 딸(당시 26세)이 경찰에서 유족 신분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범행 기간을 전후한 알리바이도 대부분 일치해 용의선상에서 배제돼야 했다.
그러나 순천경찰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순천지청은 백씨 딸을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한 뒤 딸이 자신의 사생활 문제로, 숨진 모친 최모씨와 자주 다투면서 앙심을 품어온 것으로 조사했고 이후 백씨가 공범으로 몰렸다.
1심 무죄 → 2심 유죄 → 2012년 대법원 유죄 → 2022년 재심 청구
1심인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검찰 수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백씨 부녀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인 광주지법은 이들이 범행을 자백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2년 3월 백씨에게 무기징역, 딸에게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 이후 10년이 지난 2022년 재심이 청구됐다.
재심 재판이 열린 광주고등법원. 고영호 기자2023년 재심 개시 여부 재판에서의 검찰 주장
2023년 8월 8일 광주고등법원 제2-2 형사부(법관 박정훈 오영상 박성윤) 심리로 201호 법정에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억지 주장을 계속했다.
공판 검사는 부녀의 살인죄와 존속살해죄에 대한 재심 여부 사건에서 핵심 쟁점은 "조사과정에서 검찰의 허위진술 유도와 회유·협박이 있었는지"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백씨 부녀가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조사받을 당시인 2009년 8월 24일 밤 9시 50분과 8월 27일 저녁 7시 31분 등 진술 녹화 영상을 제시하며 "살인 피의자의 억울함과 무죄를 말하려는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일관성을 확인하려는 것으로, 허위진술을 유도하거나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영상에 나오듯이 딸이 농협 계좌번호를 외워서 작성하는 것을 보더라도 지적 능력이 낮거나 사회적 연령이 낮지 않다. 백씨 부녀에게 누명을 씌울 어떤 이유나 동기도 없다"고 공정하게 수사했음을 강변했다.
검찰은 "담당 검사가 피의자 신문 조서를 허위로 만들려는 고의성도 없었고 부녀에게 진술거부권과 변호인 조력권도 언급하되 형사소송법대로 낭독하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백씨 부녀, 재심 재판에서 억울함 호소
백씨는 재심 재판 개시 여부를 앞둔 법정에서 "학교를 다니지 못해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오는 등 처지가 불우했다"고 말했고, 딸은 "엄마를 죽이지 않았는데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초기 수사를 담당했던 광주지검 순천지청. 고영호 기자박준영 변호사의 반박
변론에 나선 박 변호사는 검찰이 공소장과 의견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CCTV를 숨기려 하는 등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맞섰다.
재심 전문으로 유명한 박 변호사는 "검찰이 제출한 영상에서 정모 수사관 태도를 보면 피의자들을 향해 웃거나 비웃고 있다"며 "영상 녹화가 되지 않은 부분의 조서를 검찰이 제멋대로 작성했다"고 반박했다.
박 변호사는 "딸에 대한 정신감정 결과 상당히 낮게 나왔고 딸이 마을 도서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장 진술 등이 있는데다 검찰 조사 등 낯선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받아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 검찰의 강압과 압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딸의 지적 능력에 대한 자료를 재판부에 수사기록으로 제출하지도 않았다.
박 변호사는 "딸이 '청산가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엄마를 죽여요'하고 했는데 이런 진술이 법원에 제출되지 않았다"며 "검찰은 딸의 지적 능력이 낮은 것을 이미 알고 '모의'나 '고자질' 등 뜻이 뭔지 아느냐고 묻는 등 오히려 지적 능력이 낮은 점을 '이용'까지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행에 사용했다는 막걸리 구입처와 범행 경로도 도마에 올랐다.
막걸리를 판매했다는 식당은 범행에 쓰인 750㎖ 용량의 막걸리는 취급하지 않았다.
딸이 막걸리를 구입하기 위해 집에서 순천 시내까지 오간 국도와 고속도로· 시내버스 등 경로에 CCTV가 10대 이상 있어 찍혔어야 했지만 검찰은 CCTV 자료가 없다며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막걸리에 탔다는 청산가리도 부녀가 오이농사를 하면서 이용한 것을 범행에도 사용했다고 검찰이 주장했지만, 20년 이상 오이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오이에 청산가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이구동성으로 진술한다"고 강조했다.
백씨(왼쪽)가 2024년 1월 순천교도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박사라 기자2024년 재심 개시
대법원 3부는 "검사가 위법하게 수사권을 남용했다"며 검찰의 항고를 기각하고 2024년 9월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서 부녀가 순천교도소에서 석방됐다.
재심 개시 2년 1개월이 지난 2025년 10월 28일 마침내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이미 부녀는 13년 세월을 영어의 몸으로 묶여야 했다.
△ 2025년 무죄 판결에 백씨 딸·박 변호사, 검찰 수사 성토
백씨 딸은 재심 무죄 직후 "검사나 수사관에게 진짜 이렇게 수사하면 안 된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며 "그때 생각하면 진짜 치가 떨린다"고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박 변호사도 "문제는 16년 전 검찰의 불법에만 있지 않다"며 "재심 법정에서 공판 검사가 총체적 위법에 눈을 감았고 과거 검사의 잘못을 감싸는 질문까지 하면서 반성과 성찰 대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백씨 아내를 숨지게 한 진짜 범인이 따로 있어 잡아야 했는데, 검찰이 무리하게 부녀를 지목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백씨 부녀와 박 변호사의 검찰을 향한 직격탄에 검찰이 다시 불복해 항소할 것인지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