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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그래, 군대는 빠지는 게 정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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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2023년 7월 수해 지원 현장에서 숨진 채수근 해병 순직 사고는 개인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군 복무중이던 아들과 같은 또래여서 내 자식이 당한 사고처럼 가슴이 한없이 쓰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후볐팠던 부분은 국가의 부름에 흔쾌히 입대한 청년의 죽음을 놓고 정작 국가와 군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었다.
 
육지는 물론 바다에서도 싸운다는 해병대가 어떻게 강물에 빠져 죽었는지, 수해 현장 지원 작전을 나가면서도 해병대에는 흔하디 흔한 구명 조끼 하나 왜 챙겨가지 않았는지 등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했어야 했다.
 
그러나 국가와 군 수뇌부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책임자를 비호했다.
 
군대 가기 좋아하는 사람은 맍지 않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래도 군대는 갔다 와야지'라며 아들들을 군대에 보낸다.
 
보통의 국민들이 이처럼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데에는 '국가가 나를, 내 아들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 해병 순직 사고는 일반 국민들의 이런 믿음을 송두리째 깨뜨렸다.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특검을 방문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박종민 기자서울 서초구 순직해병특검을 방문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박종민 기자
해병대 자체 조사에서 과실 치사 핵심 혐의자로 지목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경찰 수사에서는 빠졌다.
'조사를 잘했다'며 해병대 자체 조사 결과를 최종 결재까지 했던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하룻만에 입장을 바꿔 경찰 이첩을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조사를 이끌었던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은 '항명죄'로 처벌하려고도 했다.
 
이 전 장관의 갑작스런 돌변이후 이른바 'VIP 격노설'이 흘러 나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로 적시한 해병대 자체 조사 결과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VIP 격노설을 부인했지만 입장 돌변 무렵 '800-7070' 전화번호와 통화했다는 사실과 그 번호가 용상 대통령실로 추정된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랐다.
 
채 해병 순직 '사고'는 정권 핵심부가 개입된 수사 방해 외압 '사건'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채상병 수사외압'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채상병 수사외압'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그러자 윤 전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교체하고 이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발령냈다.
시중에는 외압 의혹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이 전 장관을 도피시키려는 꼼수라며 '런종섭'이라는 비아냥까지 퍼졌다.
 
대통령과 국방장관, 해병대 사령관과 사단장, 그리고 그 중간에 있던 수많은 참모들의 모습에서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덕적으로 책임감을 느끼지만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일선 군 지휘관들은 골육지정(骨肉之情)을 지휘 방침으로 흔히 내세운다. 말 그대로 뼈와 살을 나눈 부모의 심정으로 병사들을 자식처럼 돌보겠다는 것이다.
 
자식이 질병으로 죽어도 '건강한 신체를 물려주지 못한 내 탓'이라며 자책하는게 부모의 마음이다.
히믈며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물가에 내놓고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도 '나는 책임없다'고 목소리를 높일까. 
거짓 부모만이 책임을 회피한다.
 
채 해병 사건은 책임을 다한 국민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거짓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런 거짓 국가에게 진심을 다할 국민이 있겠는가.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자 해병대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자 해병대예비역 연대 회원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군대 가기는 싫지만 그래도 가야지'라며 징집에 응해온 수많은 아들들과 그 부모들은 더 이상 입대를 응원하지 않을 것이다. '합법적으로 할 수만 있다면 군대는 빠져라. '라는 심리가 확산될 것이다.
저출산으로 병역 자원이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런 심리는 국방력 약화로 직결된다. 
채 해병 순직 사건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국기 문란으로 보는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주 법원이 이 전 장관 등 수사 방해 외압 의혹 관련 피의자 전원에 대해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게 법원의 기각 설명이다.
'미안하기는 한데 법적으로 책임없다'는 당시 군 수뇌부들의 항변과 별반 다르지 않게 들린다.
 
영장 기각으로 윤 전 대통령의 외압 의혹을 파헤치려던 특검 수사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식적으로 납득가지 않는 일련의 현상에 국민들은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이다.
'그래 군대는 빠지는 게 정답이야. 체중 미달이든 부동시든 급성 간염이든 머든 조그만 사유라도 대서 빠지는게 맞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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