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송호재 기자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부산 고리원전 2호기 사고관리계획서를 승인했다. 계속운전(수명 연장) 승인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심사 중단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들은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23일 제223회 회의를 열고 고리2호기 사고관리계획서 승인을 의결했다. 안건 표결을 진행한 원안위는 참석 위원 7명 가운데 6명이 찬성해 계획서를 승인했다. 사고관리계획서는 중대사고를 포함한 원전 사고 발생 시 사고의 확대를 방지하고 사고의 영향을 완화해 안전한 상태로 회복하기 위한 전략, 이행 체계 및 설비 등 제반 조치를 규정한 문서다.
원안위는 이어서 고리2호기 계속 운전(수명연장)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 앞서 원안위는 지난달 25일 제222차 회의에서 같은 안건을 상정해 심의했지만 자료 보완과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계속 운전 여부 판단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고관리계획서를 승인하면서 계속 운전도 승인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원안위가 계속 운전을 승인하면 고리2호기는 2033년 4월까지 연장 가동할 수 있게 된다. 부산 기장군 고리2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685MWe급 가압경수로로, 2017년 영구 정지된 고리1호기를 제외하면 국내 최장수 원전이다. 40년간 가동한 뒤 지난 2023년 4월 설계수명 만료로 가동이 중단됐다.
이날 원안위 결정은 설계수명이 만료된 다른 원전들의 계속 운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고리3·4호기와 한빛1·2호기, 한울1·2호기도 원안위에 계속운전 허가(안) 심의를 신청한 상태다. 고리2호기를 포함해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됐거나 만료될 예정인 국내 원전은 모두 10기에 달한다.
탈핵부산시민연대 등 5개 시민단체가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고리2호기 수명 연장 심사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탈핵부산시민연대 제공
심사 중단을 주장해 온 환경단체들은 이미 원안위가 수명 연장을 승인할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태여서 거센 반발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최경숙 탈핵시민행동 집행위원장은 "소송을 진행해 심의 자체가 무효라는 걸 주장할 계획"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임기 만료로 원자력 전문가 2명이 빠진 채 진행됐다.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 단순히 재적 의원 과반수 기준으로 심의하는 게 맞는지 등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서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탈핵부산시민연대와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5개 시민단체는 이날 오전부터 원안위 앞에서 고리2호기 수명 연자 심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원안위가 산업과 정치 논리를 앞세워 설계수명이 끝난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핵발전의 경제성과 안정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운전의 불안정성과 노후 설비의 위험을 외면하고 있다. 어떤 경제 논리도 국민의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20일 이들 단체는 서울행정법원에 고리2호기 계속운전 허가안 심의·의결 회의 소집행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원고는 고리원전으로부터 30㎞ 이내인 방사선비상대피계획구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 1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