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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이 '반란'인가…전북 경찰, 수개월 째 공수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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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지적 후 '여순사건'으로 수정…여전히 반란 암시
경찰 "반란이 여순사건만 의미하지 않아"
전문가 "사려 깊지 못해"…이재명 대통령 "국가폭력 희생자 없어야"

전북경찰청 전경. 심동훈 기자전북경찰청 전경. 심동훈 기자
국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군인을 공산당으로 몰아 집단 학살한 여순사건을 여순반란으로 표기했던 전북경찰청이 역사관의 일부 표기를 변경한 가운데, 여전히 여순반란을 암시하는 문구가 남아있어 경찰 조직의 역사인식이 도마에 올랐다.
 

 '여순 반란' 지적 후 3개월…'반란'만 '사건'으로 바꾸고 내용 수정 없어 

전북경찰청 1층 역사관의 게시물. 여순사건으로 수정된 게시물 이외에도 여전히 반란을 암시하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심동훈 기자전북경찰청 1층 역사관의 게시물. 여순사건으로 수정된 게시물 이외에도 여전히 반란을 암시하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심동훈 기자
지난 20일 CBS노컷뉴스가 전북경찰청 1층 역사관을 확인한 결과 경찰은 정부 수립 초기의 경찰을 소개하는 게시물에서 '1948년 정부 수립 전후 도내에서 뿐만 아니라 타 지방에서 일어난 좌익 세력의 반란과 소요에 대한 원정 진압에 나서 성과를 거뒀다'는 문구를 여전히 기재 중이었다.    
 
앞서 지난 8월 27일 CBS노컷뉴스가 '여순반란 공비를 수색하는 경찰'이라고 표기한 게시물을 지적한 이후 '여순반란'이란 표기를 '여순사건'으로 바꾼 것 외에는 여전히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암시할 만한 내용이 남아 있는 것이다.
 
더욱이 첫 문제 제기 후 약 3개월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게시물 검토를 위한 자문기관 섭외조차 이뤄지지 않아 경찰의 수정 의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여순사건은 정부 수립의 초기 단계에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 4·3사건'진압 명령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순천 지역을 비롯해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 무력 충돌 및 진압 등의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지난 2010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여순사건을 국가가 민간인을 부당하게 학살한 '국가 폭력'으로 규정했고, 국회도 지난 2021년 사건 진상규명 등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볍(여순사건법)을 제정했다.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북경찰청이 '좌익세력의 반란'이라며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여길 수 있는 내용을 역사관에 게시하고 있는 것은 특별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경찰 "반란 표현이 여순사건만 의미하지 않아"…전문가 "사려깊지 못한 태도"

전북경찰청 역사관에 게시된 '정부수립 초기의 전북경찰' 게시물. 심동훈 기자전북경찰청 역사관에 게시된 '정부수립 초기의 전북경찰' 게시물. 심동훈 기자
전북경찰청 측은 "좌익세력의 반란이라는 문구와 반란군이라는 표기가 모두 여순사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1949년 당시 상황을 보면 여순사건 외에도 빨치산 등 좌익 세력의 활동이 도내에 있었기에, 경찰은 그들을 소탕한 것을 성과로 기록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당 내용과 함께 게시한 사진이 모두 여순사건과 관련되거나 여순사건의 단초가 된 제주4.3사건을 다룬 사진이라는 점을 근거로 전북경찰청의 답변이 '사려 깊지 않다'고 판단했다.
 
여순항쟁 연구자 주철희 박사는 "전북경찰청에 게시된 3장의 사진은 여순사건과 관계된 사진이 맞다"며 "빨치산을 토벌하는 경찰의 사진이었다면 '반란'이란 표현보다는 '소요'나 '반군' 등의 표현을 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북경찰청의 답변이 타당하기 위해선 '도내에서 뿐 아니라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이란 내용 중 전북에서 언제 반란이 일어났는지를 상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전북에선 체제를 전복시키거나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의 반란이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경찰의 성과를 자랑해야 한다면 '반란'이란 단어를 빼고 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도 언급한 여순사건…경찰은 조속히 게시물 수정해야

여순사건을 언급한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여순사건을 언급한 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SNS를 통해 여순사건을 언급하며 "다시는 국가 폭력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으로서 엄중한 책임의식을 갖고 이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또한 "2021년 제정된 여순사건 특별법'에 따라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말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여순사건의 단초가 됐던 제주4.3사건이 국가의 폭력이었다며 사과하고, 노무현 정부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여순사건을 국가폭력으로 인정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의 진실 규명 노력이 이어지는 와중에 전북경찰청의 위와 같은 행태는 도민의 안전과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의 부실한 역사 인식을 나타낸다.
 
더욱이 2007년 첫 게시판 개설 이후 여러 차례 학계의 문제제기와 법 제정까지 나아간 사안임에도 게시판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게시판 운영의 방만함까지 드러난다.
 
전북경찰청은 "2007년 게시 이후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어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학술기관 의뢰를 통한 게시물 전반을 수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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