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사법개혁안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 증원이 핵심인 '사법개혁안'을 발표하며 연내 입법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현실화하면서 사법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4심제 논란이 제기된 헌법재판소가 법원 판결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재판소원'은 사법개혁안에선 제외됐지만 민주당이 당론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여야나 사법부 사이의 갈등의 불씨로 남게 됐다.
민주당, 대법원 14명→26명 증원 핵심…사법개혁안 발표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전날 발표한 사법개혁안에는 대법관 수 증원과 함께 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 법관 평가 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 심문제 도입이 포함됐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안을 토대로 대법관 수를 기존 14명에서 26명으로 증원한다는 계획이다. 대법관 수는 한 해 4명씩 3년 동안 12명이 증원되는데 법안 공포 1년 뒤부터 시행된다.
대법관 증원이 마무리된 이후 대법원은 6개의 소부와 2개 연합부로 재편된다. 연합부는 현재 1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 역할을 하게 되는데 다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선 전체 대법관의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는 하나의 합의체를 구성해 판결하기로 했다.
대법관 추천위원회 정원은 확대하고 구성을 다양화한다. 당연직 위원이었던 법원행정처장이 빠지고,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포함된다. 또 위원 중 대법관이 아닌 법관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리고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을 받도록 했다. 이 가운데 1명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하며 각 지방 변호사협회장이 추천하는 변호사 1명도 위원에 포함된다.
민주당은 대법관 추천 기준에 '성별·지역·경력 등이 다양한 후보들을 추천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위원장은 기존 '대법원장 결정'에서 호선으로 변경했다. 법관 평가에 대한변호사협회의 평가도 반영되는데 법관 인사위원회도 대법원장·전국법원장회의·전국법관대표회의가 1명씩 추천해 구성한다. 기존에는 대법원장이 3명을 모두 임명해 왔다.
또 형사사건의 경우 1심과 2심의 판결문 열람복사를 전면 허용하도록 했다. 현재는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건의 판결문만 복사가 가능하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과정에서 법원이 대면심문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도 도입된다.
사법개혁 방향보다 속도 중요…사법부 '우려'
민주당은 발의된 법안을 토대로 공론화 절차를 밟을 예정인데 사법개혁이 사실상 현실화되면서 사법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밝혀온 개혁 방향과 큰 틀에서는 차이는 없지만 문제는 개혁 추진 속도가 더 중요할 수 있어서다.
사법부 내에서는 대법관을 증원하더라도 속도 조절과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찍부터 나왔다. 대법관이 증원될 경우 대법관을 돕는 부장판사급 재판연구원들 역시 증원돼야 하는데 1·2심 재판 인력 부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 전날 국정감사에서 법원장들도 취지는 일부 공감하지만 증원 숫자나 시기 등에 대해서는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냈다.
전날 법원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은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대는 형성했다"며 "다만 증원 수나 시기 등에 대해서는 공론화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민석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증원 필요성이나 그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대법관 증원 문제는 대법원의 입장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선 지난달 26일 진행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통해서도 일정 정도의 공감대가 확인되기도 했다.
당시 법관대표회의에선 "법관의 질을 유지하면서 증원을 하기 위해선 법관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하고 대법관을 소수 증원해 나가면서 사실심에 대한 영향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에 앞서 지난달 12일 진행된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다수 판사들은 "충분한 숙고 없이 진행된다"거나 "사실심 기능 약화가 우려된다. 상고제도의 바람직한 개편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며 단기간 내 대폭 증원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재명 대통령 퇴임 전 대법관 26명 중 22명 임명…차기 대통령도 동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이 이재명 대통령을 감싸기 위한 '사법부 장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퇴임 전 전체 대법관 26명 중 22명을 임명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에 이어 차기 대통령도 대법관 26명 가운데 22명을 임명하게 되는 만큼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삼권분립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도권 법원 한 부장판사는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이 현실화될 경우 사실 여부를 떠나 대법원이 여당에 장악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사법부 역시 이에 대한 대응과 함께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4심제' 논란으로 재판소원은 개혁안에서는 제외됐지만 민주당은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법원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다 헌법 아래에 있는 기관"이라며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있다면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에선 재판소원 제도 도입은 결국 4심제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전날 국감에서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은 "결국 어떤 형태의 재판이든 4심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권리구제는 지연되고 경제적 약자가 과연 제대로 우대받는지 문제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법개혁안 발표를 계기로 여야는 물론 여당과 사법부 사이의 갈등은 더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에 대해 "권력의 하수인을 만들겠다는 사법 장악 로드맵"이라며 "결국 이재명 정권이 밀어붙이는 사법개혁은 정권이 재판을 지배하고, 재판 결과도 정해주겠다는 독립성 제로, 공정성 제로의 사법 쿠데타"라고 평가했다.
사법부는 당장 대응에 나서진 않고 있지만 이전보단 적극 대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거취 압박과는 또 다른 조직의 명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제도가 허락하는 선에서 모든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에 대해 사법부도 참여하는 논의 틀에서 충분한 숙의와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해 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별도의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법사위 소관 법률 개정안에 대해서는 기존과 같이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