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이번 송환 대상자들은 이른바 '웬치'로 불리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보이스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사기) 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호송 차량 23대 등을 타고 충남경찰청 등 6개 관할 경찰관서로 압송된다. 인천공항=황진환 기자캄보디아 사태 대응을 위한 외교·사법 조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바라보는 대통령실과 여당간 시선 차가 드러나고 있다.
사태 초기에는 여당 인사의 주요 역할로 인해 한국인의 '피해' 상황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구출'에 방점이 찍혔던 반면, 실제 국내 송환 국면에서는 '범죄자' 귀국이라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실에서는 '구출'로 바라보지 말아달라는 언급까지 나오면서 당정간 인식 차가 또 드러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캄보디아TF 2차 회의…사법처리 보고 후 '풍선효과' 대응 논의
위성락 안보실장, 캄보디아 이슈 대응 현황 브리핑. 연합뉴스대통령실은 20일 캄보디아 한국인 대상 취업사기·감금 등 범죄 관련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를 열고 한국인 1차 송환 이후의 대응 방안에 대해서 논의했다.
대통령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이날 2차 회의에서는 그간의 캄보디아 상황에 대한 관계기관의 보고에 이어, 이번 대응으로 인해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 범죄 혐의자들의 캄보디아 인근국 도주, 이른바 '풍선효과'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놓고 의견이 오갔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각국의 경찰 및 정보 당국과 공조를 강화하면서, 우리 외교 및 경찰 당국의 현지 파견, 영사 등 관련 인력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출입국 심사 강화, 핫라인 구축 등 해당국들의 실질적인 협조 확보를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TF는 △고위급 대표단의 현지 파견 등 교류 강화 △공적개발원조(ODA) 및 한-아세안 협력기금 등을 활용한 역내 치안 역량 강화 등을 통해 캄보디아 인근 국가들이 이들에 대한 검거와 수사 등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하는데 방점을 두기로 했다.
캄보디아 당국과의 공조를 통해 지난 주말 64명에 달하는 한국인의 국내 송환을 무사히 마친 만큼, 풍선효과가 인근국에서 발생할 경우 유사한 방식으로 효율성 높은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인 셈이다.
與의원들의 '구출' 움직임…청년들 구조 목소리 외면 못해
1차 국내 송환자 64명 중 대부분에 대해 경찰청이 구속영장 청구, 마약 검사 등 실질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당과 대통령실의 인식 차는 송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발단은 지난 8월 지지자로부터 받은 제보를 통해 한국인 16명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었다.
당시에는 납치·감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구출'이라는 인식이 높았는데, 최근 송환작업 과정에서 이들 대다수가 범죄 혐의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캄보디아 현지를 다녀온 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이 이들을 두둔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오른쪽 두번째)을 단장으로 한 재외국민 안전대책단이 한국인 납치, 구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1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캄보디아로 출국하기에 앞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귀국 후 SNS를 통해 "감금된 우리 청년 3명을 구출했다"며 "경기도 남양주시 청년 정모 군과 한국 청년 2명을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데려온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튿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그 3명을 면담할 때 3명이 처음에는 경계의 눈으로 봤었는데, 제가 신분을 밝히고 했더니 아주 안도하고 너무 감사해 했다"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를 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해서 그 캄보디아 경찰에 다시 허가를 받아서 전화로 직접 어머니와 전화를 시켜줬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아울러 이들 중 1명은 자신의 지역구 주민의 아들로, 어머니가 시의원을 통해 찾아달라는 부탁을 했고, 이를 들어주기 위해 자신과 의원실 보좌진이 나서서 여러 루트를 통해 수소문한 끝에 이들을 찾는 "작전이 됐다"고도 전했다.
"악의 소굴", "첩보 영화"에 불거진 논란…"문신 보고 국민 놀라"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로 알려진 태자단지 건물 호실 출입문에 재물과 보배를 불러들인다는 뜻인 중국어 '초재진보((招財進寶)'의 합체자가 적혀있다. 연합뉴스아직 '엄마를 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어린 청년들인 만큼 인도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했고, 지역구민의 민원인 만큼 적극 대응하는 것이 지역구 의원의 의무라는 설명인 셈이지만 논란은 불가피했다.
김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악의 소굴에 그대로 있으면 생명을 담보할 수 없어 구출은 당연한 일이었다"며 "간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된 초범들이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SNS에서는 "세 사람을 구하기 전까지 마치 '첩보 영화'를 찍는 심정이었다"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현지 스캠 범죄에 연루된 한국인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경찰청이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인 데다, '범죄자'와 '피해자'라는 단순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악의 소굴"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들이 마치 해당 범죄조직에 강제로 끌려간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데다, "구출", "첩보 영화" 등으로 묘사한 것은 이들을 송환하는 일이 불가피한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하는 선행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행위다.
캄보디아 당국이 구금 중인 한국인 중에는 취업사기나 단순 가담만이 아닌 스캠 총책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같은 판단에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같은 비판의 지점에서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비난에 나섰다. 주진우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납치된 피해 국민을 구출해 오라고 했더니 범죄로 구금돼 있던 64명을 무더기 송환했다"면서 "문신을 보고 국민이 놀랐다. 구금돼 있던 사람 중에선 고문·납치 등 강력 범죄에 깊숙이 관여된 사람도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 프레임에 대통령실도 '부담'…"전혀 도움 안 돼" 토로도
캄보디아 사태를 바라보는 이같은 여당 내 인사들의 시각은 대통령실에도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사법당국이 1차 송환자 대부분에 대해 범죄혐의를 수사하면서 구속 등의 조치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구출 프레임'이 형성될 경우 이같은 조치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여당의 이른바 '구출 행보'가 되려 정부의 사법대응은 물론 현지 공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임 정부에서의 과도한 캄보디아 지원 탓에 불거진 일인 만큼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구조라든지 이렇게 볼 문제가 아니다'라는 내부적인 반응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여당 의원들의 구출 발언은 정부의 사태 대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번 사태는 범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좀더 신중하고 조용히 처리가 됐어야 하는데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식적으로 적극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된 사안"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아주반은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일정을 마친 후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이동해 이번 사태와 관련한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들은 캄보디아 내 스캠 산업의 근거지인 '웬치'(园区) 현장 방문 등에 나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