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불이 붙었던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실 배터리 화재가 정부 주요 시스템 마비와 국민 불편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귀결되자 배터리 업계에서는 제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될까봐 불안해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가뜩이나 잇따른 전기차 화재 여파로 '안전'은 배터리 업계의 주요 이슈였는데, 이번 사태가 폭발점이 돼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업계 역점 사업에까지 악영향이 번질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노후 배터리 교체' 권고 이뤄졌는데…그대로 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지난 26일에 발생한 국정자원 화재는 전산실에 설치된 무정전 전원장치(UPS) 배터리를 지하로 이설하는 작업 중 배터리 1개에서 불꽃이 튀면서 발생한 것으로 소방당국은 보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발화점으로 지목된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제작한 54V 리튬이온배터리로, UPS 제조사인 A사가 이를 공급받아 LG CNS의 배터리모니터링시스템 등을 장착해 정부에 2014년 8월 납품했다.
이 배터리의 성능 보증 기한은 10년으로, 지난해 이미 교체 권고가 이뤄졌다. 지난해 6월 국정자원이 지정한 A사가 점검을 진행했고, 이 때
업무 지원차 함께 점검을 했던 LG CNS가 배터리 성능 보증 기한이 다 됐으니 교체가 필요하다는 권고 의견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 같은 권고는 이행되지 않았는데, 국정자원은 행정안전부를 통한 질의 답변에서 "작년 6월 정상판정을 받으며 교체 권고를 받은 게 맞다"면서도 올해 검사 결과에서도 정상판정이 나와서 지속해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자원이 노후 배터리를 무리하게 사용한 게 화재의 원인이 됐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특히 중요 전산 정보가 담긴 서버와 배터리의 간격이 60cm에 불과했던 점도 부실 관리론에 힘을 싣는 요소다.
CBS 취재진은 최초 설치 과정과 이후 관리 절차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이날 서울 성동구의 A사 본사를 찾았지만, 회사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조사가 진행 중이라 설명하기 어렵다"고 극도로 말을 아꼈다.
배터리 이설 작업이 전원 차단 등 제대로 된 안전 조치 없이 위험하게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설 작업을 맡은 업체는 A사나 납품사가 아닌 제 3의 영세업체로 알려졌다. 국정자원 측은 "전원은 꺼놨다"고 했지만, 경찰은 사실 관계를 따져보고 있다.
배터리 안전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한 연구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예컨대 10년이라는 특정 기간을 기준으로 그 시점이 지나면 배터리의 화재 가능성이 크게 불어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노후 배터리가 새 배터리보다는 화재 가능성이 높은 건 맞다"며 "정확한 원인은 정말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신중론을 내놨다.
아직 화재 원인 불명확하지만…배터리 안전 불안 확산에 업계 '발 동동'
연합뉴스배터리를 중심으로 확산한 이번 화재가 정부의 전산 시스템 40%(647개)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자 배터리 업계의 표정은 어둡다. 한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큰 화재 사고의 원인으로 배터리가 지목되고 있는 만큼 국민 인식에 '불안한 제품'으로 각인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대용량 전력 공급이 필요한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확대와 맞물린 ESS 사업 수주를 역점 사업으로 삼아왔는데, '안전 불안 확산'과 맞물려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ESS에도 리튬이온 배터리가 들어간다"며
"이번 화재로 거론되는 UPS는 유사시 임시로 전원을 공급하는 역할이라 잦은 충전이 필요 없어 ESS보다 안정성이 높다. 그런 만큼 ESS의 상대적 불안정성이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중점 추진하는 정부도 2029년까지 2.22GW 규모 ESS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이번 화재가 이 계획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해 ESS에는 UPS 대비 고도의 안전장치가 탑재되기 때문에,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이번 화재를 'ESS 신중론'으로 곧바로 연결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업계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