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저녁 어스름이 밀려올 때 핸드폰이 울린다. 동물병원 수의사 친구다. 무엇인가에 놀라기라도 한 건지 목소리가 높고 약간 떨린다.
"세상에! 아기 백로가 4차선 도로를 걸어서 횡단하는 거예요. 천지 무서운 줄도 모르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가슴이 멎질 않네."
"아스팔트 위로 걸어간다고요?"
"아파트 단지 쪽에서 도로 건너 폐교된 초등학교 있잖아요? 그곳 운동장으로 가는 거 같았어요. 걸어서요.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다가 뒤차 때문에 출발했어요."
"낮에 어린 백로들이 운동장으로 내려와 있던데…… 그 녀석들인가 보네."
마음이 심란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수백 마리의 백로들이 숲 위로 펼쳐진 노을을 따라 천천히 선회하는 것을 보았다.
이틀 전, 강풍이 불고 종일 찬비가 내렸다. 비가 그치고 백로들이 홀연히 사라졌다. 산과 맞닿은 시장 상가와 4차선 도로 건너편 아파트 단지는 적적하다. 상가 골목의 돼지국밥집, 육개장집, 칼국숫집, 오리고깃집, 찜닭집, 횟집, 김치찌갯집도 조용하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수의사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자 작년 봄날 어느 점심시간이 떠오른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거 봐요? 알을 찾나 봐. 둥지에서 떨어진 알!"
"너무 불쌍해!"
젊은 여자 둘이 발을 동동 구른다.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밑동이 잘려 어지럽게 넘어져 있는 상가 옆 소나무 숲을 바라보고 있다. 바리캉으로 밀어낸 머리털 자국 같은 흙 위로 백로들이 겅중겅중 돌아다닌다. 놀란 듯 경황도 없고 인간에 대한 경계도 사라졌다. 가늘고 긴 다리로 두리번거리며 품고 있던 알을 찾는다. 유난히 키가 큰 여학생이 목청을 높인다.
"백로가 떠난 뒤에 베어도 되잖아! 산란기에 나무를 잘라버리는 것은 살인이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오십 대 여자가 매몰차게 쏘아붙이고는 홱 돌아선다.
"여기 하루라도 살아봐. 그런 말이 나오는지."
백로들은 무너진 숲으로부터 북쪽으로 50여 미터쯤 떨어진 초등학교 옆산으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작년 여름을 버텼다. 그리고 찬 바람이 내려오자 어느 날 남쪽 하늘로 사라졌다. 백로는 겨우내 잊혀졌다.
올봄 운동장 옆을 지나올 때 백로 생각이 났다. 그들이 찾아오는 계절인 것을 알았을 때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까?
어느 날 아침 떠들썩한 백로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밤사이 도착한 그들은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낮에는 가까운 강 하구로 날아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황어를 사냥한다. 송어와 피라미, 붕어, 미유기, 참마자, 버들치, 미꾸라지를 잡는다. 배가 부르면 물살이 얕은 모래톱에 발을 담그고 졸음에 잠긴다. 해가 기울어 서쪽 하늘이 붉어지면 숲으로 돌아와 소란스럽게 떠들다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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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퇴근 무렵, 동물병원에 들렸다. 수의사 친구가 올해의 백로들이 무사히 돌아간 것을 축하하자며 따뜻한 홍차가 담긴 종이컵을 내민다. 뒤처진 어미 백로들과 아기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상인들은 백로와의 공존을 사치라고 하잖아요. 그들에게는 배설물 냄새와 비린내, 노랫소리도 악다구니처럼 들릴 거니까. 그런 생각이 장사를 망치는 주범으로, 실존의 과녁으로 백로를 세운 거예요. 욕망이 깊어질수록 욕망의 대상은 얕아지잖아요."
내 말을 듣고 있던 수의사 친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묻는다.
"작년 봄 기억나요? 둥지가 무너지던 날요. 바닥을 헤매다가 문득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공중을 바라보던 어미 백로요. 그 표정이 지워지지 않아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그러고 보면 비극이란 게 별거 아니다. 깊었던 것이 얕아지는 거고, 낮았던 것이 높아지는 거다. 그 간극 만큼 서로의 생각도 달라져서 슬픈 것이다.
수의사가 다시 묻는다.
"어제 저녁 4차선 도로를 걸어가던 아기 백로는 어떻게 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