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저 양반이 젊을 때 군대 갔는데 포병부대 훈련소에 배치됐데. 신병들에게 박격포 쏘는 거 알려주느라 종일 귀가 고생했나 봐. 잠을 자면서도 귀에서 쾅쾅거리는 환청을 들어야 했대."
시장통 가건물에서 칼국수, 보리밥에 뻥튀기를 파는 그녀는 남편 이야기를 팍팍한데도 재미있게 한다. 남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안다. 바람이 참나무 잎사귀를 흔들어 자기를 확인하는 것처럼.
"사람 운수가 희한하지…… 제대하고 들어간 첫 직장이 포항에 있는 철강회산데 거기가 종일 굉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네! 그런데 어느 날 이 양반이 죽을 뻔했잖아. 크레인이 추락한 거야. 옆에 있던 동료가 떨어진 쇳덩어리에 맞아 즉사했어. 이 양반은(손가락으로 바깥 수돗가에 앉아 있는 남편을 가리킨다)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진 거야. 얼마나 끔찍했겠어. 불과 한 발짝 차이로 생사가 갈린 거잖아!
그때부터 이 양반이 회사를 안 가겠다고 하더라고. 무서워서 못 가겠다는 거야. 어떻게! 무섭다는데…… 입에 거미줄을 친다 해도 이 양반을 그곳으로 내쫓을 수 없잖아.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안 됐어. (쯧쯧 혀를 찬다) 옆에 있던 동료가 눈 깜짝할 사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도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식당은 너저분하지만 따뜻하다. 그녀의 온기가 생기를 불어넣는 봄볕처럼 아늑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수돗가에 앉아 있는 남편을 역사의 증인이라는 듯 바라본다. 존경스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심정이 느껴진다. 불과 두어 걸음 떨어진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지 자꾸만 고개를 뺀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사표 내고 나니까 생계가 막막하잖아? 이 양반이 여기 시장바닥에서 뻥튀기 장사를 시작했어. 나는 강정 만들어 팔고. 애들이 한창 클 땐데 돈이 필요하잖아. 학교 보내야지…… 그런데 참 희한하지…… 하필이면 왜 뻥튀길까.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큰소리로 웃는다)
대포처럼 뻥! 뻥! 터지는 소리를 종일 들어야 했어. 귀에다 허연 솜을 꼽고는 하루 내내 뻥이요! 뻥! 외치며 살았어. 군대에서 그렇게 듣다가 또 듣기 시작하니까…… 이 양반 귀가 금세 닳더라고. 점점 못 알아듣는 거야."
잠시 말이 끊어졌다. 그녀가 뜨거운 보리차를 머그잔에 따라 마신다. 식당 바깥쪽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어둑해졌다.
"어느 날, 날 보고 조금만 기다리라 하더라고. 그러더니 산림조합에서 주는 무슨 자격증을 따오더라고. 그때부터 벌목공이 된 거야. 산에 올라가 엔진 톱으로 나무 베는 거 있잖아. 그 일로 애들 대학 보내고 다 키운 거야.
그런데 참 희한하지! (아까처럼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한바탕 웃는다) 또 귓병 나는 일을 시작한 거야. 엔진 톱 소리가 얼마나 요란해! 그러니까 저 양반이 평생 귀하고 전쟁하며 살아온 거야. 나이가 올해 일흔여섯이니까…… 늙었잖아. 그만둬야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벌목공 일을 안 하거든. 그래서 늘 바빠.
저거 봐. (도토리가 가득 담겨 있는 다라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 양반이 산에서 주워온 거야. 저 도토리를 갈아서 묵 만들어 팔잖아. 토종 도토리라 맛이 달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불쑥 말한다) ……우리한테는 우리 둘밖에 없어."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노인은 바깥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여전히 도토리를 씻고 있다. 키가 작지만 손놀림이 꼼꼼하고 몰입력이 강하다. 바깥 하늘에는 어둠별이 나왔을까? 식당을 나오며 그를 향해 인사를 한다. 노인은 꿈쩍하지 않는다. 그녀가 소리 내어 웃으면서 그냥 가라고 손짓한다.
"들으나마나여. 보청기 안 끼면 아무 말도 못 들어!"
가을 저녁은 이르고 쌀쌀하다. 잠시 멈춰서서 칼국숫집을 돌아본다. 백열전구가 식당으로 들어오려는 어둠살을 막고 있다. 노인이 수돗가에서 일어선다. 광선에 비친 그의 얼굴이 소년처럼 웃고 있다.
귓가에 맴도는 노래를 '귀벌레'라 한다. 노인은 코르크에 막힌 빈 병처럼 파란 바다 위에서 자기만의 노래를 듣는지도 모른다. 막힌 귓가를 맴도는 파도의 노래보다 장대하고 성스러운 음악을 들으며…… 모든 것들에 연연하지 않으며……
"저 양반한테는 저 양반만이 듣는 노래가 있는 거야. 그래서 사는 거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