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6일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한 공군 1호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유엔총회 데뷔를 마친 이재명 대통령이 귀국 직후 국내외 현안에 직면했다. 미국 순방 중 쟁점 법안이 처리되며 여야 대치가 가팔라진 데다, 뜻밖의 화재로 대국민 서비스 상당수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정동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슈를 선점해야 하는데, 오히려 지지율이 빠진 것으로 나타나면서 화재 후속조치 결과의 여파가 중요해졌다.
연이어 회의 주재한 李대통령 "전 기관 전수조사" 지시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28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와 관련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당초에는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 회의가 이뤄진 후 별도의 대통령 주재 회의가 있을 예정이었지만, 사안의 심각성과 신속한 대응 필요성을 고려해 국무총리 주재 회의를 취소하고 이 대통령이 직접 회의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당초 전날 국정자원의 항온항습기 복구를 마치고, 이날까지 상당수 서비스를 재개하는 것을 목표로 복구에 나섰다. 하지만 인터넷 우체국을 비롯한 다수의 대국민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비판 여론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상황을 점검하면서 "신속한 시스템 복구와 가동, 국민 불편 최소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지시했지만, 좀처럼 구체적인 복구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지 않다.
이 대통령은 오후 중대본 회의에서는 '전 부처 안전·보안 관련 전 기관 전수조사'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그는 "전 부처가 나서서 최소한 안전·보안 시설에 관한 부분은 아예 밑바닥부터, 원점에서부터 혹여 문제가 없는지 근본적인 조사를 전 부처를 통해서 전 시설에 대해 최대한 신속하게 조사해 보시기를 바란다"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원점에서부터, 기초부터 철저히 점검해서 혹여 문제 요인이 있는지를 다 조사해 주시기 바란다"고 연거푸 조사를 지시했다.
사안의 중요성은 물론 지지율 하락세 막기 위한 신속 대응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이 대통령이 국정자원 화재에 직접 대응에 나선 것은 사안의 심각성도 있지만, 대통령 스스로의 기민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번 미국 순방은 국제사회에 '민주 대한민국'의 복귀를 알리고, 정상 외교를 복원했으며, 대북기조인 '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하면서 '대한민국 세일즈'에 나선 점 등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만나 합리적인 관세협상을 당부했을 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거나 관세협상에서의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실용외교에 의문부호를 낳고 있다.
이같은 관점은 여론으로 이어진 모양새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55%로 한 주 전보다 5%p가 낮아졌다.
외교는 긍정평가에서도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고(20%), 국정수행 부정평가의 원인으로도 가장 많이(14%) 지목됐다(무선전화 가상번호 인터뷰 조사 10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국내 현안 대응에 대한 호평이 필요하다.
APEC·협치 성과 불투명…'빠른 복구'로 반등 계기 만들까
연합뉴스이 대통령에게는 내달 말로 예정된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협치 회복이라는 현안도 있지만, 이들에서는 어떠한 성과가 나올지 예측이 쉽지 않다.
이 대통령은 남북 관계가 교착상태인 점을 고려, 지난 달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 자신을 '페이스메이커'라고 지칭하며 북미 대화를 북한 비핵화의 지렛대로 삼겠다고 했다.
최근 북중 관계가 돈독해진 점을 감안할 때 APEC 정상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한반도 평화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데, 실제 정상 간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기 전에는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알기 어렵다.
국민의힘과의 협치도 한동안 쉽지 않은 상태다. 이 대통령의 순방기간 동안 여당이 검찰청 폐지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과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을 처리하면서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을 하러 거리로 나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 만큼 이번 국정자원 화재는 이 대통령에게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비스가 중단된 시스템을 추석 전에 빠르게 복구하고, 직접 조사를 지시했던 안전장치를 만들어 나갈 경우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만, 자칫 복구가 더뎌져 시민 불만이 누적된다면 추가적인 신뢰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화재는 순방 성과를 되돌아볼 시간조차 없을 만큼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대통령도 그 어느 현안보다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이라며 "복구에 속도를 냄은 물론, 원인을 국민께 소상히 알리고, 재발 방지책 또한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