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부처 위의 부처'로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다뤘던 기획재정부가 17년 만에 조직이 반토막이 나며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예산 기능은 떨어져 나간 반면, 통합될 것으로 예상됐던 금융 정책 기능은 개편 대상에서 제외된 바람에 '경제 컨트롤 타워'로 위상을 유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국회는 지난 26일 본회의에서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이재명 정부 첫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이르면 30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다음 달부터 공포·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내년도 예산안 처리 일정을 고려하면 기재부는 내년 1월 2일부터 재경부와 예산처로 분리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책의 주요 수단인 예산 기능이 쪼개진 반면, 이 달 초 발표됐던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해 금융위원회로부터 국내금융 정책 기능이 이관되는 방안이 무산되면서 기재부는 '차포'를 뗀 반쪽짜리 부처로 전락할 위기다.
긴급 고위 당정협의에서 금융당국 개편안을 철회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 25일, 기재부 대변인실은 "신설될 재정경제부가 부총리 부처로서 경제사령탑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며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확정시 경제정책 총괄 조정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기재부 안팎에는 이번 조직개편의 가장 큰 피해자가 기재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기재부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직접 관장할 뿐 아니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직접 손에 쥐고 있었다. 기재부 조직도를 살펴보면 1차관 산하에 세제실과 차관보 산하의 경제정책, 국제금융 기능을 뒀고, 2차관 라인에는 예산과 정부 재정을 다뤄왔다.
정부 재정 씀씀이(예산)와 국제 금융 시장을 관리하면서 직접적으로 거시 경제의 틀을 다루는 한편, 각종 세제를 통해 시장을 간접적으로 조율해오는 구조다. 더구나 나랏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출입구를 모두 틀어막은 채 정부 각 부처가 추진하는 모든 사업의 생사 여부를 결정할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정부 인력 수급을 도맡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부처 위의 부처', '부처 중의 갑'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동시에 그동안 기재부와 그 수장인 경제부총리가 흔히 '경제 컨트롤타워'라고 불렸던 이유다. 역대 정부마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등 이름을 달리하며 조직 개편을 거듭했지만, 언제나 예산·세제·금융 3대 수단 중 2개 이상을 맡겨 경제정책을 관장하도록 해왔다.
이 때문에 비록 앞서 발표됐던 개편안에서 예산 기능이 쪼개진다고 예고됐지만, 금융위의 국내 금융 기능이 재경부로 통합되면 국내외 금융을 망라하는 경제정책 총괄기구로서의 위상은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결국 받은 것 없이 예산 기능만 내주고 만 재경부가 과연 지금처럼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할 수 있을지는 조직 내부에서부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내부 소통망 '공감소통'에는 조직 개편에 대한 불만을 담은 글이 쏟아졌다. "경제정책 총괄은 무슨", "방구석 여포", "간부님들 반성하셔야 한다" 등 노골적인 성토가 이어졌다.
한 기재부 과장급 공무원은 "경제 정책 방향을 세운다 한들, 실제 현장에서 사업을 집행할 부처들에게 목소리를 전달할 수단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부처 간에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조율할 수단도 없으니 '경제 컨트롤타워' 노릇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재부의 한 서기관은 "조직 개편안이 공개되자 재경부에 금융 기능이 통합돼 오히려 위상이 강화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애초 기재부는 여권으로부터 '모피아'로 불리며 개혁 대상으로 불렸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며 "기재부 내부에서 무슨 수를 썼든 간에, 처음부터 기재부의 힘을 쪼개겠다는 방침이 있었으니 예고된 결말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재경부의 인력 이탈도 우려하고 있다. 정부 재정을 담당할 기획예산처가 승진 등 경력 관리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면, 재경부가 비인기부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재부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이런 저런 이유로 휴직했던 부하 직원들이 돌아올 때가 됐는데도 조직 개편 방향을 살피느라 휴직을 연장하는 등 업무 복귀를 늦춘다는 얘기도 들려온다"며 "물론 각 부처마다 장단점이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