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다음달말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참석차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K-조선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방안을 업계가 추진 중이다.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 무역협상에서 조선협력이 유력한 카드로 떠오른 가운데, K-조선의 위상을 실감케 함으로써 협상 진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가장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HD현대중공업이다. 이 회사는 울산 조선소내 둘안산에 위치한 영빈관을 새로 단장하는 등 귀빈 맞이 준비에 나섰다.
영빈관 근처 전망대에선 단일 조선소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광활한 조선소 야드가 한 눈에 들어온다. APEC이 열리는 경주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장점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이 곳에 꼭 모시고 싶다"며 "백 마디 말보다는 K-조선을 직접 체험하도록 하는 게 (한미 협상에서)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HD현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할 경우 지난 17일 진수식을 한 첨단 이지스 구축함 '다산 정약용함'(광개토-Ⅲ Batch-Ⅱ 2번함)도 홍보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다산 정약용함은 역시 이지스함인 세종대왕급(광개토-Ⅲ Batch-Ⅰ)보다 탐지‧추적 능력이 2배 이상 대폭 강화되는 등 세계정상급 성능으로 무장했다.
미국이 더 탐낼 만 한 것은 K-조선 특유의 신속성이다. 다산 정약용함을 2023년 7월 착공식 후 불과 2년여 만에 진수한 것에서 보듯 빠른 건조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는 선체 블록별로 나눠 건조하면서도 내부 설비 장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노하우 덕분이다. 아울러 블록을 하나의 선박으로 합체하는 과정에서도 고도의 접합 기술을 자랑한다.
HD현대 뿐 아니라 한국 조선업체에 보편화된 능력으로, 외국 전문가들이 탄성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미국은 전체 선체가 완성된 뒤에야 설비를 장착하기 때문에 공정이 더딜 수밖에 없다고 한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이 미국이 군함을 주문할 경우 한국 조선소에서 블록 단위로 만든 뒤 미국에 보내 조립하는 방안 등을 제안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HD현대와 함께 해양방산 투톱을 이루는 한화오션도 트럼프 대통령 등 외빈 유치에 조용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은 거제 조선소가 경주와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지만 미국과의 조선협력에 먼저 뛰어든 것을 장점으로 삼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미국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인수했고, 한국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군함 MRO 사업 진출에 성공해 지금까지 3건을 수주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말 필리 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를 방문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산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언급한 것은 한미 조선협력의 상징적 장면이다.
한화오션은 트럼프 대통령이 1998년 기업인 시절에 거제 조선소(당시 대우중공업 거제옥포조선소)를 방문했던 인연에도 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제도는 1950년 12월 흥남 철수작전의 마지막 기착지로서 당시 미국의 안보적 기여를 보여주는 역사의 장이라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솔깃할 부분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우리에겐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인연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있다"며 "거리도 (미·중 정상들의 숙소가 서울이 될 가능성을 감안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시와 거제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요청하는 초청장을 각각 발송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경쟁도 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