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여당에서 맹공을 퍼부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른바 '비밀 회동설'이 정치권을 달군 지 단 며칠 새 '가짜뉴스' 논란에 휩싸였다. 의혹 제기의 단초가 된 제보가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신빙성이 흔들린 탓이다.
제보의 출처가 친여(親與) 성향 유튜브 채널이라는 점도 파장을 키우고 있다. 가짜뉴스에 칼을 빼든 여당이 정작 유튜브에 떠도는 의혹들을 여과 없이 끌어다쓰면서 가짜뉴스 확대·재생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4개월 만에 다시 꺼낸 '비밀 회동설'
조 대법원장의 비밀 회동설을 국회에서 처음 언급한 건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다. 서 의원은 지난 5월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비밀 회동을 뒷받침하는 제보라며 음성 변조된 녹취 파일을 틀었다.
해당 녹취에서 발언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4월 4일 윤석열 탄핵 선고가 끝나고 조희대·정상명(전 검찰총장)·김충식·한덕수 4명이 점심을 먹었단 말이지. 그 자리에서 조희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거야.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한다고. 그런 얘기를 했대"라고 전했다. 김충식은 김건희씨 모친인 최은순씨의 측근이다.
당시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회동 의혹이 재차 수면 위로 부상한 건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 질문 때다. 민주당 부승찬 의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비밀 회동설을 4개월 만에 다시 꺼냈다. 이후 정청래 대표가 '충격적인 의혹'이라며 특검 수사를 촉구했고, 여당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휘청이는 신빙성…與 맹공도 주춤
연합뉴스강공으로 치닫던 민주당의 압박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 의원이 처음 의혹을 제기할 당시부터 지적돼온 '전언의 전언' 형식인 제보 내용을 두고 이번에도 신빙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 의원이 재생한 녹취가 실제 육성이 아닌 인공지능(AI) 기술로 재가공된 파일이라는 말들까지 나오면서 진실 공방은 들불처럼 번졌다.
서 의원보다 먼저 동일한 녹취를 방송에서 공개한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의 반응도 가짜뉴스 논란을 증폭시켰다. 열린공감TV 정천수 대표는 지난 17일 비밀 회동설이 사법부까지 덮치자 "애매한 제보 내용을 그의 주장으로 방송했다. 확인할 수 없는, 확인되지 않는 사안"이라며 "영화나 드라마도 허구라는 점을 미리 밝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튿날 방송에서도 정 대표는 "취재로 팩트를 확인하기 어려워 썰전에서 다뤘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자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한발 빼는 모양새가 노출됐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19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회동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봤냐'는 질문에 "(의혹을) 처음 거론하신 분들이 해명하셔야 될 것 같다. 근거·경위·주변 상황 등 얘기한 베이스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의원이 상당한 제보를 통해 제기한 의혹에 대해 당 지도부가 이야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진실 공방으로 흐르는 데에 크게 대응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겉으론 '언론개혁'…안에선 '던지고 보기'
사법부 수장까지 때린 제보의 신빙성이 흔들리면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당내에서부터 분출하고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검증 과정은 거쳐야 한다. 유튜버들의 주장을 공론의 장에 그대로 옮기는 건 옳지 않다"며 "민주당이 친여 성향 유튜버들에게 의존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내로남불'을 꼬집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겉으로는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외치면서 정작 당의 정략적 목적과 부합하면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정보라도 일단 던지고 본다"며 "이런 식이라면 그동안 당에서 외친 언론개혁이 어떻게 설득력을 얻겠나"고 반문했다.
전날 민주당 언론개혁 특별위원회는 '허위조작정보 퇴출법'을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사회적 폐해를 유발하는 유튜버들의 가짜뉴스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철퇴를 놓겠다는 취지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언론개혁을 추진한다면서 (비밀 회동설이) 가짜뉴스로 드러나면 개혁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당은 당장 역공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근거도 없고 검증되지도 않은 제보를 들이밀며 마치 중대한 범죄라도 드러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형사 고발과 국회 국정조사를 예고했다.
이어 "민주당은 허위 사실 유포를 근절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며 "국민 앞에 공공연하게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정청래·서영교·부승찬 등은 해당 제도의 제1호 적용 대상"이라고 말했다.
유튜버와 선 그은 서영교 "현직의원 제보"
연합뉴스유튜버발(發) 가짜뉴스 논란에 서영교 의원은 선을 그었다. 열린공감TV에서 비밀 회동설을 언급하기 약 열흘 전인 5월 1일 이미 조 대법원장과 관련한 별도의 제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열린공감TV에서 조 대법원장의 비밀 회동설을 공개하자 비슷한 맥락의 제보라고 판단해 녹취를 인용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서 의원은 지난 5월 2일 법사위에서 "윤석열의 친구 조희대가 대법원장으로 임명받는 전후 과정 속에서 '이재명 사건이 올라오면 대법원에서 선거 전에 확실하게 정리하겠다'라고 하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19일 페이스북에 자신이 입수한 별도의 제보는 "현직 국회의원으로부터 받았다"며 "열린공감TV에서 (비밀 회동) 의혹이 제기됐고, 5월 1일에 제보받은 내용과 같은 맥락이라 14일 법사위에서 질의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