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관련 입법청문회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해병대 채상병 순직과 수사 외압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순직해병 특검이 17일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로 평가되는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주호주대사 임명 관련 범인 도피 의혹의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지난 7월 2일 해병특검이 출범한 지 77일 만이다.
순직해병 특검 정민영 특별검사보는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출국, 귀국, 사임 과정 전반에 대해 당사자가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전반적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다른) 주요 피의자에 대한 조사는 참고인 조사 이후에 진행된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이 장관에 대한 참고인 조사는 적으면 이날 한 번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했다. 주호주대사 임명부터 사임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물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이 전 장관에 대한 다른 수사도 진행하고 있지만 수사 진행 상황 등을 고려해 범인 도피 의혹 수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이 전 장관이 참고인 신분인 이유는 형법에서 범인 도피 처벌 대상을 '도피한 (당사)자'가 아닌 '도피하게 한 자'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151조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 전 장관은 2023년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피의자 신분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받으며 출국금지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3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하자 나흘 후인 3월 8일에 출국금지가 해제됐고, 이후 호주로 출국했다.
윤 전 대통령이 수사외압 의혹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이 전 장관을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비판 여론이 급격히 커지면서 이 전 장관은 출국 11일 만에 귀국하게 된다. 갑작스런 귀국의 명분은 같은 달 28일에 예정된 외교부의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검은 해당 회의가 외교부 등 주관부서가 아니라 국가안보실 주도로 급조됐을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출국 과정 뿐 아니라 귀국 정황으로까지 수사 범위를 넓힌 셈이다.
참고인 조사 이후 특검팀은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로 시선을 옮겨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을 재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수사는 23일 이뤄진다.
이 전 장관 조사 이후 특검팀은 당시 외교부와 법무부, 국가안보실에서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로 입건된 주요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이들에 대한 조사는 이르면 다음 주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노공 전 법무부 차관, 심우정 전 검찰총장(당시 법무부 차관) 등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으며 특검팀은 이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바 있다.
특검팀이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에 이어 외교부, 법무부,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까지 본격화하면서 의혹의 정점에 있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도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팀은 이 전 장관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 조사가 최소 세 차례 정도 이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이르면 이달 안에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해병특검은 이 전 장관에 대한 혐의를 다지기 위해 핵심 참모였던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을 전날 소환해 조사했다. 박 전 보좌관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혐의자를 축소하라는 지침을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하는 등 수사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박 전 보좌관에 대한 수사는 내일(18일) 오전에도 예정돼 있다.
이 전 장관은 2023년 7월 채상병 순직 사건이 발생할 당시 국방장관으로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직후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조사 결재를 번복하는 등 'VIP 격노설'과 수사외압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핵심 인물로 지목돼 왔다.
이 전 장관은 국회 증언거부 혐의로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국회에서 '02-800-7070 전화를 누가 사용하는지 알고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밝힐 수 없다"며 증언을 거부한 혐의다.
한편 특검팀은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목사)에게 이날 출석하라는 3차 출석요구서를 보냈지만 김 목사 측은 출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해병특검은 김 목사가 이번에도 나오지 않으면 법원에 기소 전 증인신문 절차를 청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