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차세대 AI(인공지능)칩 자체 제작에 돌입하는 등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이 제2의 '엔비디아' 기업을 키우는 것은 물론 거기에 들어가는 HBM 등의 메모리 반도체 개발까지 가속화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납품 위주의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中 빅테크, 속속 AI칩 자체 개발…엔비디와 경쟁하나
7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빅테크 알리바바는 미국 엔비디아의 중국시장 전용 AI칩인 H20을 대체할 차세대 AI칩을 자체 제작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칩은 알리바바가 기존에 거래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아닌 중국 현지 파운드리 업체가 생산을 맡았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 화웨이 AI칩인 '어센드'를 구매하도록 권하고 있지만, 화웨이와 경쟁하는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들은 자체 AI칩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AI반도체 설계 기업인 캠브리콘은 최근 AI칩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텐센트와 딥시크 등 주요 고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AI반도체 설계기업인 메타엑스도 H20을 대체할 AI칩을 개발해 양산을 준비중이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중국의 AI칩 개발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상하이 등 중국 지방정부는 2027년까지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의 자급률을 70% 이상, 베이징은 자급률 100%를 목표로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AI칩 자립률이 34%(2024년 기준)에서 2027년 82%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엔비디아 동맹 K반도체 흔들리나…"韓반도체, 손실은 아냐"
연합뉴스중국의 자체 AI칩 개발 가속화가 글로벌 시장에 단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AI칩 개발과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글과 애플, 메타 등 미국 주요 빅테크도 자체 AI칩 개발에 나섰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엔비디아의 최대 적수로 꼽히는 AMD도 시장 점유율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I칩에 필수적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중국 수출이 막혀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알리바바가 자체 AI칩 양산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는 중국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투자증권 채민숙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알리바바의 자체 칩은 일부 저사양 추론 영역에 국한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알리바바의 자체 칩 개발에도 엔비디아의 입지는 흔들림 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AI 칩 개발과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단기간 내 이를 달성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제한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중국의 AI칩 자체 개발이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칠 영향 역시 제한적이란 관측이 나온다.
산업연구원 김양패 전문연구원은 "(중국 HBM)시장은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계를 기준으론) 원래 있던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의 자체 칩 개발이 가속화된다고 해서 국내 업체의 매출이 줄어드는 등 우리 반도체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中 반도체 전반 기술 자립 가속은 부담…"잠재적인 위협 요소"
연합뉴스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가 중국 반도체 업계의 자립을 돕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이런 추세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반도체 업계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칩에 들어가는 HBM 등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납품해왔는데,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시장이 커지거나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국내 반도체 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의 AI칩 자체 개발 움직임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에 따른 반작용으로 봐야하고 AI칩을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는 물론 메모리 반도체까지 전 영역에서 기술 자립이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반도체 업계가 위협적인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양팽 연구원은 "(중국 빅테크의 AI칩 자체 개발 등으로 당장) 국내 반도체 업계가 손실을 입지는 않겠지만 커지는 중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만약 향후 AI칩 주도권이 엔비디아 등에서 중국 빅테크로 넘어갔음에도 여기에 우리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가지 못한다면 위협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