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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공무원'의 적극적 방관…한덕수는 어떻게 내란에 일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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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생활 중 불법 계엄 수차례 겪은 韓
특검 "계엄 위헌성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계엄 책임자가 국정장악 시도까지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 황진환 기자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 황진환 기자
▶ CBS가 국회를 통해 확보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 공소장 中 
"피고인은 1970년 6월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관세청, 경제기획원 등에서 근무하였으며, 1996년 특허청장, 1998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2001년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2004년 국무조정실장, 2005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2007년 제38대 국무총리 … 2022년 5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제48대 국무총리로 재직하였다."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공소장은 그의 화려한 이력으로 시작된다. 행정고시 합격 후 공직 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요직은 모두 거친 그는 진보·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중용된 인사로도 주목받았다. '관운의 대명사'라거나 '풀보다 빨리 눕는 사람'이라는 멸칭이 붙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공직생활 54년과 두 번의 국무총리 이력을 다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은 한 전 총리가 뛰어난 공무원이었다는 점에서, 불법한 계엄과 독재의 역사를 직업 현장에서 겪은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12·3 비상계엄 당시 그의 수상한 행위들을 '적극적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한덕수'이기에 그 시각, 그 장소에서 국무총리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도 외면한 건 고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4년 공직' 한덕수, '불법 계엄'만 4번째 목도

내란특검은 한 전 총리 공소장에 그가 공직 생활 중 수차례 불법한 계엄이 선포됐고, 그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와 국민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일을 경험한 점을 적시했다.
   
한 전 총리가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하고 7차 개헌을 통해 유신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가 관세청 초임 사무관으로 일하다 육군본부 행정병으로 입대해 복무하던 때였다.
   
한 전 총리가 경제기획원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했던 1979~1980년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로 전국에 또다시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2·12 군사반란과 계엄령 확대를 거쳐 불법적으로 입법권을 장악한 후 대통령에 선출됐다.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에 저항하는 시위대가 군부의 무력에 스러졌고, 수많은 야당 정치인과 공직자, 대학생 등이 체포·구금되는 등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
   
특검은 이같은 역사를 경험한 한 전 총리이기에 비상계엄이 선포될 경우 어떤 위헌적인 조치가 수반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준비설'에 대해 한 전 총리는 국회에 나와 "계엄을 설사 선포하더라도 국회가 과반수 이상으로 의결하면 즉각 해제하게 돼 있지 않냐", "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은 결국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킨다는 얘기"라고 명확히 짚었다.
   
그리고 불과 석 달 후인 2024년 12월 3일 그는 공직생활 중 4번째 계엄을 목도하게 된다.
   

위법한 '계엄 문건' 본 韓의 선택…절차라도 갖추자?

연합뉴스연합뉴스
계엄 선포 예정 시각(12·3 밤 10시)을 2시간 앞두고, 윤 전 대통령은 한 전 총리를 비롯해 계엄 관련 지시사항을 하달할 주요부서 장관 5명과 조태용 국가정보원장만 먼저 불렀다. 공소장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당시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상계엄선포 담화문',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과 함께 비상계엄 관련 지시사항이 담긴 문건 등을 건네받았다. 비상계엄의 선포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유로 계엄을 선포한다는 내용과 더불어 국회 통제까지 명시한 위헌·위법한 내용이 들어 있던 문건들이다.
   
특검은 이때 한 전 총리가 할 수 있었던 일들이 많았다고 지적한다. 실질적인 국무회의 심의를 통해 비상계엄 반대 의견을 대통령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국무회의록을 작성해 기록을 남기며, 국법상 행위인 비상계엄 선포를 문서로 할 것을 대통령에게 요구하거나 이에 대한 부서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는 국무위원을 소집하자는 건의를 하는데 그쳤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을 설득해보려 이같은 제안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일들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했을 때 특검은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무위원을 더 불러서 정족수를 맞추려 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이 확보한 당시 CCTV 화면 속에선 김 전 장관이 한 전 총리에게 손가락 4개를 들어 보이며 국무회의 의사정족수를 채우기 위해서 4명의 국무위원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김 전 장관이 손가락 4개를 다른 국무위원들에게도 연신 들어 보이는 동안 한 전 총리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한밤 중 왜 다급하게 부르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의사정족수인 11명의 국무위원이 모였을 때, 정작 이들을 소집하자고 했던 한 전 총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2분간 일방적으로 계엄 선포 계획을 말한 후 생중계가 예정된 브리핑룸으로 향했다.
   

"참석했으니 서명 좀"…이상민과도 심층 논의

윤석열 전 대통령(오른쪽)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는 모습. 연합뉴스윤석열 전 대통령(오른쪽)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후 망연자실한 국무위원들이 흩어지려던 때 강의구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국무위원들께서는 서명을 하고 가라'는 취지로 붙잡았다. 다시 대접견실로 들어온 국무위원들에게 한 전 총리 역시 서명을 요청했다. 그는 국무위원들에게 "대통령실에서 같이 모여서 참석했다는 의미로 서명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말리려 국무회의를 소집했다던 한 전 총리가 계엄 반대 논의는커녕 기본적인 절차조차 갖추지 못한 회의의 존재를 입증하는 서명을 왜 받으려 한 것인지 의문을 사는 대목이다. 국무위원들은 "서명은 못한다"며 곧 대접견실을 빠져나갔다.

특검이 확인한 CCTV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선포를 마치고 집무실로 들어가던 윤 전 대통령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다가가 '전화하라'는 취지로 손동작 하며 대화하는 장면을 봤다. 그러나 정황상 이 전 장관에게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선 안된다고 제지하거나 법상 권한을 발휘해 지휘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국무위원들이 퇴실하던 때 한 전 총리는 이 전 장관에게만 '남아 있으라'는 취지로 손짓해 둘만 남아 16분간 대화했다. CCTV 화면 속에서 이 전 장관은 자신의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문건 3장을 꺼내 보며 한 전 총리와 긴밀히 협의했다. 특검은 당시 화면 속 문건의 페이지 수와 이들의 행위태양으로 볼 때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조치 등 위법한 계엄 지시사항이 담긴 문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계엄 '안' 막아놓고 국정운영 시도…끝까지 내란방조?

특검은 한 전 총리가 계엄해제를 지연시키려 한 혐의도 공소장에 적시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위해 분투하던 때 한 전 총리는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등에게 "국회에 통고는 되었냐"며 알아보도록 했다. 계엄법상 절차적 요건을 갖췄는지만 계속 확인한 셈이다.
   
계엄을 말리려 했다는 그는 정작 국회가 계엄해제 결의안을 가결시킨 후엔 신속히 움직이지 않았다. 방 실장이 "해제 국무회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 보시라,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총리님 밖에 없다"고 말했지만 한 전 총리는 "조금 한 번 기다려보자"고 뜸을 들였다는 게 특검 조사 내용이다. 국회의 계엄 해제 가결로부터 약 1시간이 지난 새벽 2시가 돼서야 정진석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고 한 전 총리는 국무위원들에게 국무회의 소집을 통보했다.
   
계엄 해제 다음날인 12월 5일부터는 뒤늦게 '비상계엄 선포문'을 꾸며 절차적 흠결을 보완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비상계엄 선포 전 이미 국무위원들의 서명을 얻었어야 하는 문건을 뒤늦게 만들려 한 것이다. 한 전 총리는 김용현 전 장관과 함께 서명을 올렸다가 12월 8일 아침 김 전 장관이 긴급체포되는 등 수사가 본격화되자 해당 문건을 폐기해 달라고 입장을 바꿨다.
   
그날 오전 한 전 총리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당정 공동 국정운영' 담화를 발표하고 자신이 정국 수습을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공소사실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특검은 한 전 총리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그가 계엄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국정운영을 시도하려 한 점을 내란 증거인멸의 연장선에서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앞둔 상황에서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룬 것 역시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킴으로서 비상계엄의 책임 소재를 흐리거나 은폐하려는 시도였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등 공무원'이 비상계엄 국면에서 내린 순간의 선택들은 이제 형사법정의 심판을 받게 됐다. 54년간의 공직생활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위기의 순간에 충성을 택한 대상이 국민이 아닌 눈앞의 상급자였던 그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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