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우리강 도보 생명순례단이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흐르는 조강을 옆에 두고,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다. 박창주 기자첫발은 경기도 연천의 평화습지원이었다. 북한 두류산골에서 시작된 임진강 물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파주와 고양의 평화누리길을 거쳐 꼬박 일주일, 연인원 500여 명에 이르는 순례단원들이 장장 123㎞ 7개 코스를 밟아 29일 도달한 곳은 김포 애기봉이다. 모두 북한과 맞닿은 물길이다.
12년 만에 부활한 '우리강 도보 생명순례'다. 이날 대북 최접경지인 애기봉을 끝점으로, 35도 안팎의 폭염을 뚫은 6박 7일간의 걸음을 멈췄다. 애기봉은 임진강과 한강이 하나로 만나 흐르는 조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깊게 모자를 눌러 쓴 단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힘겹게 행렬을 이어갔지만, 표정만은 모두 밝아 보였다.
걷기만 한 건 아니었다. 경기북부 권역별 관광 명소에서의 '쉼'도 있었다. 그 멈춤은 당포성 음악회와 임진강포럼, 황포돗배체험, 한강하구 습지이야기 등 역사·문화 콘텐츠와 어우러진 배움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이들이 다녀가며 SNS를 타고 퍼진 지역홍보는 덤이었다.
수원에서 온 단원 원유라(44·여) 씨는 "각종 예산을 들여 인위적인 공간들을 지으면서 강이 좁아진다는 걸 자세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며 "삭막해 보이는 북녘을 마주하고 걸으면서는 북한과 우리의 간극을 더 좁혀 통일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여정을 돌이켰다.
물길따라 이어진 20년 발걸음…"자연의 흐름과 속도 맞춰야"
우원식 의장과 염태영 의원이 단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창주 기자우리강 도보 생명순례가 자연환경은 물론, 사회적 공적 가치를 공유하고 회복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큰 물결로 거듭나고 있다.
이날 순례단 해단식에는 공동단장인 염태영(더불어민주당·수원무) 국회의원과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이준경 대표를 비롯해 57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특히 우원식 국회의장도 참석해 단원들을 격려하며, 세족식과 평화의 물길 임진강 발바닥 페인팅 등 각종 기념행사에 동참했다.
우 의장은 초선 의원이던 20년 전 대한민국 5대강을 대상으로 도보순례를 출발시킨 장본인이다. 당시 염 의원은 청와대 비서관으로서 힘을 보탰다. 전국 5대강 중 가장 맑다는 전라도 섬진강에서 시작해, 금강과 한강, 낙동강 등을 굽이쳐 올해는 북한 강원도부터 경기 김포시로 이어지는 한강 제1지류인 임진강에서 동행했다.
우 의장은 단원들과의 대화에서 "물관리 일원화 깃발을 들고 시작한 발걸음이 임진강까지 연결됐다"며 "첫 걸음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점차 풀잎에 맺힌 이슬, 땅의 지렁이, 예쁜 꽃들도 보이더라. 그렇게 자연의 속도에 빠져 환경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 행사로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내년엔 북한 임진강 구간을 걷게 해달라는 한 단원의 깜짝 요청에는 "조만간 중국 가서 어쩌면 북한 관계자를 만날지도 모르는데,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화답했다.
'평화' 띄운 임진강 순례…염태영표 '물의 정치'로 동행
우 의장과 염 의원이 북한 땅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있다. 박창주 기자올해 순례의 핵심은 '자연과 평화'다. 강을 통한 생태환경의 회복은 물론, 남북 유일의 공유하천이자 분단의 아픔을 관통하는 임진강을 따라 걸으며 평화 메시지를 던졌다.
강을 살려 궁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취지도 있다. 또 북한과의 거리를 좁힌 도보 경로 설정으로, 민간 차원의 교류와 공동체 형성을 도모하려는 의지를 담아냈다.
순례단원들이 애기봉 전망대로 이어진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우리강 도보순례의 부활은 염 의원이 우 의장에게 "계속 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 성사됐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남북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가진 이재명 정부 기조에 맞춰,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임진강에서 관련 공감대를 넓혀보자는 제안이었다.
더욱이 경기도 경제부지사 출신이기도 한 염 의원은 그간 군사 요충지인 경기북부 접경지 활성화에 목소리를 높여 왔다. 경기도지사 선거 당내경선 때도 경기북부 거점을 누비며 현안을 챙겼다.
염태영의 정치 시계는 물과 함께 흘러 왔다. 3선 수원시장을 하기 전 환경운동가로 이름을 알리며 '하천 살리기'에 몰두했다. 수원천을 덮는 복개사업을 막아내며 정계에 발을 디뎠다. "물이 마르면 도시의 모든 자연 섭리도 끊긴다"는 철학으로, 시장으로서 권한 역시 생태환경을 덮는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데 쏟았다.
이 같은 각별한 물 사랑이 그를 우리강 도보 생명순례로 이끈 셈이다.
염태영 "尹이 환경가치 삭감…강은 李정부 상징성 지녀"
염 의원과 우 의장이 평화의 물길 관련 글귀를 남기고 있다. 박창주 기자
염태영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모처럼 이재명 대통령과 의원들이 점심을 함께하는 날인데 가지 못했다"면서도 "자연을 살리고 남북평화의 물꼬를 트는 상징적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동행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하천과 강의 의미에 대해서는 "도심 속 물줄기는 인위적 시설물을 쌓는 개발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빌딩숲 사이로 흐르는 생태 통로이자, 사람들이 걷고 힐링하는 휴식공간이며, 온난화를 막아주는 '회복의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몰락한 윤석열 정권 때 자연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예산 삭감으로 고통받았는데, 자연의 미래가치를 아는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했다"며 "임진강을 비롯한 공유하천을 중심으로 정부가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다지고, '공동관리' 체계를 구축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우리강 도보순례의 비전과 관련해서는 "예성강, 남강 등 소위 독립강들을 다음 목적지로 할지, 5대강 지류를 위주로 걸을지 논의할 예정"이라며 "우원식 의장이 시작한 사업이지만, 이젠 국민 모두와 함께하는 사업이 됐다. 시민사회와 함께 소중한 걸음을 계승하도록 힘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우 의장과 염 의원 모습. 박창주 기자
해단식은 남북교류협력 선언문 낭독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임진강은 삶의 기원이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소중한 자연 자원, 나아가 평화의 통로가 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임진강과 한강하구 생태 복원을 추진하고 습지구역을 확대해 생명체와 공동체 복원의 디딤돌로 삼는가 하면, 남북이 교류할 수 있는 공원 조성과 국제포럼 마련 등 세부 실천사항도 제시했다.
이날 발바닥 페인팅 현수막에 적힌 염 의원과 우 의장의 메시지도 한결같았다.
"강은 계속 흘러야 합니다! 생명과 평화의 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