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리는 삼성 준감위 정례회의에 참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상법 1차 개정안 처리에 이어 노동조합법 등 일부 개정안(노란봉투법), '더 센' 상법 2차 개정안까지 잇달아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여권이 '더 더 센' 3차 상법 개정까지 예고하면서 재계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요 그룹이 총수와 대관 조직 등을 총동원해 한미 관세협상과 정상회담 측면 지원을 하고 있는 와중에 수차례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을 옥죄는 법안들이 '전광석화'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더 센' 상법 개정 이어 '더 더 센' 상법 개정이 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한 이른바 1차 상법 개정안 처리에 이어 한 달여만인 전날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및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2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지난달 초 이사의 충실 의무를 일반 주주로 확대한 1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8단체는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하지만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고 투기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높아진 데 우려가 크다"며 조심스럽게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을 요청했다.
하지만 보완 입법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민주당이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담은 2차 상법 개정을 곧바로 추진하고 나서자 재계는 "신속한 입법 추진이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수차례 공동 성명과 기자회견을 통해 우려를 재차 표명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상정되는 모습. 박종민 기자경제계의 불만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배임죄가 남용되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점에 대해 제도적 개선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달래기에 나섰지만 '더 센' 2차 상법 개정안은 전광석화로 처리됐다. 기업들이 요구했던 배임죄 완화 등에 대한 입법 움직임은 진척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2차 상법 개정안 처리 다음날에야 배임죄 완화 문제 등을 논의하는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TF(태스크포스)를 발족한다고 밝혔는데, 전날 2차 상법 개정안 처리 직후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을 예고한 상황을 감안하면 두 사안이 패키지로 처리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국투자증권 정다솜 연구원은 "3차 상법개정안에는 배임죄 완화가 당근책으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며 "2차 상법개정안과 달리 3차 상법개정은 아직 여당 내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만큼 세부사항과 일정에 많은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관세협상,정상회담땐 '민관 원팀'…입법 땐 사라져"
몰아치는 기업 관련 입법에 경영권 위협을 걱정하는 재계는 무력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1차 상법 개정안 당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확대되면서 개별 주주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신사업이나 인수합병(M&A)에 대한 경영 활동 위축이 우려됐는데 2차 상법 개정안까지 더해지면서 경영진의 의사에 반하는 의사결정이 이뤄질 우려가 더 커졌다는게 재계의 주장이다.
최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준선 명예교수가 2차 상법 개정안 적용 대상 기업의 주주총회 이사 선임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이사 수를 7명으로 가정했을 때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확보할 수 있는 이사 수는 2~3명에 불과했다. 이번 개정안 통과 이후 최대 주주 측의 의사에 반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지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재계는 특히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때부터 최근까지 경제계와의 협력을 꾸준히 강조하면서도 재계의 목소리가 배제된 입법이 여당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이 대통령은 새 정부 국정기조 중 하나로 '실용주의 정부'를 내세웠고, 민주당 계열 정부로는 이례적으로 취임 9일차에 국내 5대 그룹 총수 및 경제 6단체장과 간담회를 열고 경제 성장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한미 관세협상을 앞두곤 주요 그룹의 대관조직 등을 총동원해 수집한 정보를 정부 측과 공유하는 것은 물론 그룹 회장들이 잇달아 미국을 방문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동원해 측면지원에 나섰고 이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세협상 과정에서 우리 기업인들이 애를 많이 써줘서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며 기업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 이후에도 대미(對美) 직접 투자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대통령은 국민임명식과 정상회담에 동행하는 주요 그룹 회장 등과 회동해 '원팀 코리아' 전략을 손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 관련 입법에서 기업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재계 내부에서 감지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관세 협상이나 정상회담 준비 때는 '민관 원팀'를 강조했는데 입법 과정을 보니 원팀 이라는 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작용시 신속 개정"말했지만 재계 우려 속속 현실화
경제성장전략 당정협의. 윤창원 기자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우려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부작용이 나온다면 개정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19일 노란봉투법과 상법에 대해 "(재계가 말하는)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면서도 "시행시 부작용이 난다면 언제든 신속히 개정이 가능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다음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노조법(노란봉투법)은 새로운 제도인만큼 당정이 긴밀하게 소통하며 부작용도 세심히 살펴보겠다"면서도 "경총 등에서 우려하는 상황은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고 그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개정하면 된다"고 했다. 다만 어느 시점에 부작용 해소를 위한 개정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난 24일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현대제철 하청업체 근로자로 구성된 금속조노 충납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 지회는 현대제철에 비정규직과 직접 교섭 및 직접 고용을 요구했고, 전국택배노동조합도 쿠팡 등에 교섭을 진행하겠다고 밝히는 등 하청업체 노조의 대기업 원청을 향한 교섭요구는 빗발칠 조짐을 보인다.
원하청 관계가 아님에도 근로계약 개선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청주에 SK하이닉스 공장을 짓고 있는데 SK에코플래트 협력사에서 해고된 노조원들 중 일부는 SK하이닉스에 부당해고를 해결해달라는 요구하고 나섰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SK에코플랜트 협력사의 해고 직원이라면 백번양보에 SK에코플랜트에 원청으로서 책임을 다하라고 주장할 순 있겠으나 아무 관련이 없는 SK하이닉스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은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은 부작용이 생기면 그때 개정을 하면 된다고 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서 줄어드는 국내 투자와 고용 등은 법개정이 된다고 해도 바로 회복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