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신영석. 김조휘 기자"주변에서 2030년까지 뛰라면서 등번호도 30번으로 바꾸라고 해요."베테랑 미들 블로커 신영석(38·한국전력)은 매 시즌 등번호를 연도에 맞춰서 바꾼다. 2025-2026시즌에는 등번호 25번을 달고 뛸 예정이다.
어느덧 불혹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리그 정상급 미들 블로커로 활약 중이다. 그런 신영석이 없는 코트는 아직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동료들은 2030년까지 5년 더 뛰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시즌은 데뷔 17년 차 신영석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한국전력은 외국인 선수의 줄부상 탓에 6위에 그쳐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다.
최근 경기도 오산에 있는 한국전력 체육관에서 만난 신영석은 "시즌 초반에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외국인 선수가 다치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면서 "계속 안 좋은 일이 겹쳤다. 이렇게 안 좋았던 시즌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며 지난 시즌을 떠올렸다.
이어 "어린 선수 위주로 경험을 쌓자고 했던 게 사실 많이 고통스러웠다"며 "선수라면 모든 게임에서 이기고 싶고, 지더라도 팬들을 위해 멋지게 지고 싶었는데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외국인 선수의 부재 속에서도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라는 수확을 거뒀다. 이에 신영석은 "어린 선수들에겐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며 "나도 이 친구들과 함께 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며 씨익 웃었다.
신영석. 한국배구연맹지난 시즌을 앞두고 박철우가 은퇴하면서 맏형이 됐고, 주장 완장까지 이어받았다. 하지만 새 시즌에는 서재덕이 주장을 맡는다.
신영석은 "주장을 맡으면서 좋은 기억이 없었다. 올림픽 티켓이 걸린 경기에서 졌고, 현대캐피탈에서도 주장 신분으로 트레이드되는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다"며 "내가 주장을 맡으면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아서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물러났다"고 밝혔다.
서재뎍 역시 주장직에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신영석은 "재덕이한테 많이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나서서 재덕이가 놓친 부분을 챙기려 한다"며 "재덕이가 책임감 있게 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서재덕이) 처음에는 일주일 정도 말이 없더라. 그러더니 어느 순간 눈빛이 변해서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며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역시 한국전력의 보물 같은 존재"라며 격려했다.
지난 시즌에는 팀 성적과 함께 개인 성적도 다소 아쉬웠다. 블로킹 3위(세트당 0.69개), 속공 7위(58.22%) 등으로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또 직전 시즌까지 8년 연속 차지했던 베스트 7 미들 블로커 부문 한자리도 놓쳤다. 이번에는 최민호(현대캐피탈)와 김준우(삼성화재)의 몫이었다.
하지만 신영석은 "상을 천년만년 받을 수는 없다. 좋아하는 선수들이 상을 받아서 기뻤고, 진심으로 축하해줬다"며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항상 있다. 새 시즌에는 다시 좋은 기회가 올 거로 생각한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영석. 한국배구연맹18번째 시즌을 앞둔 신영석은 "절박함을 넘어서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다"면서 "이제는 회복 능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면 못 버틸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동료들은 신영석이 2030년까지 5년 더 뛰길 바란다. 그래서 등번호도 30번을 달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에 신영석은 "일단 힘이 닿는 데까지 할 거다. 김연경 선수처럼 박수 칠 때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전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냐는 질문에는 "그냥 많은 사람들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 미들 블로커를 언급하면 애 이름이 떠올랐으면 좋겠다"며 "우승도 하고 떠나면 좋겠지만, 10~20년 뒤에도 내 이름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끝으로 신영석은 새 시즌을 앞두고 "항상 말하지만 봄 배구가 목표다. 매 경기 단두대 매치인데,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웃으면서 끝내고 싶다"며 "승리든 패배든 미련 없이 마무리하는 시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