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또 럼 베트남 당 서기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이재명 대통령과 베트남 정상의 11년만의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신호탄이란 분석이다. 그간 경제 협력체 혹은 대북정책의 협력국가로서 시각에만 갇혀있던 동남아 외교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대통령실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신호탄 될 것"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2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또 럼 베트남 당 서기장, 배우자 응오 프엉 리 여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이재명 대통령이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의 정상회담으로 '국익중심 실용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베트남 정상의 방한은 2014년 이후 11년만이다. 한-베트남 양국은 정상회담 후 양국간 협력 내용을 담은 '한국-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심화를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 발표했다. 양국은 2030년까지 교역 규모 1500억 달러를 목표로 하는 한편 과학기술과 에너지, 공급망 등 전략적 분야로 협력 확대를 약속하며 10여건의 협력 문서에 사인했다.
유엔 등 다자무대에서의 공조도 강화하기로 했다. 양국은 올해 경주 APEC정상회의와 2027년 베트남 푸꾸옥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적극 협력하고 고위급 교류도 활발하게 이어가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럼 제트남 공산당 서기장과의 정상회담을 두고 "신정부 출범 후 67일 만의 첫 외빈이자 국빈으로 우리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본격 이행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베트남 정상의 방한과 정상외교를 계기로, 출범 초 4강 외교에 집중했던 이재명 정부가 외연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와 문화, 북한 이슈만 치중했던 아세안 외교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부청사사진기자단
그간 아세안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신남방 정책'을 내놓은 것이 본격적인 아세안 외교의 출발점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주변 4강에 치중한 한국의 외교 영역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신남방 정책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 정책에서 사람, 평화, 번영의 3P(people·peace·prosperity)를 내세웠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이를 사드 보복 이후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경제다변화' 시도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한다. 한국의 관심사는 아세안과의 경제, 문화 교류에 치중했을 뿐이었다.
이후 윤석열 정부 역시 아세안에 대한 특별한 전략이 없었다. 임기 중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아세안 연대구상에 착수했지만 미국 중심 사고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하위 수단일 뿐이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아세안을 한국의 수출시장으로 보는 시각에서만 출발한 경제적 이익 추구, 또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 확보를 위한 요구가 아세안 외교의 핵심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아직까지는 구체화된 대 아세안 전략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다만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가 포괄하는 교류 확대가 시작됐을 뿐이다.
정교한 아세안 외교 필요…경주 APEC '실용외교' 정점 찍나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부청사사진기자단
전문가들은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 역시 정교한 아세안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특히 미중 갈등이 수년째 더 깊어지고 있어 동남아시아의 가치가 단순한 생산기지나 소비시장이 아닌 전략적 완충지대와 공급망 재편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이런 흐름 속에서 이전 정부들보다 실속있는 대 아세안 전략을 추구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 관계자는 "실용외교 측면에서 아세안은 접점이 많다"면서 "현재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한국의 힘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4대 강국 외교는 기본이고 이에 더해 전략적 파트너로 손을 잡을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아세안이다"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에 가려있지만 아세안은 한국에게 3번째로 큰 교역국가다. 또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는 아세안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와 뜻이 통한다. 관세 협상 등 미중 간 패권 전쟁에서 아세안이 안정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
10월 경주에서 열릴 아세안 정상회의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를 입증할 결정적인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대 아세안 외교정책의 청사진이 드러날 수도 있다. 한국과 아세안이 경제·무역 위주의 관계를 넘어 안보 영역까지 확장, 이익을 공유하는 전략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