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곧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가 맞물려 생산적 교집합을 찾을 수 있을지 가늠하는 첫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상 간 개인적 친분과 유대를 중시하는 트럼프의 성향을 감안하면, 이번 첫 대면이 앞으로 4년간 한미 관계의 온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첫 단추를 잘 꿸 수 있을까. 성공적인 회담을 위해 네 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반드시 해야 할 행동들이다. 영어 앞글자를 따 'PASS 전략(Praise, Agree, Suggest, Seek)'이라고 하자.
첫째, 칭찬하라(Praise)! 특히 미국 국민이 지켜볼 수 있는 카메라 앞에서 진심을 담아 칭찬해야 한다. 미국 CNN 방송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준비한 경험이 있는 각국 외교관들의 조언을 인용해 "칭찬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업으로 부를 축적한 트럼프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은 것은 TV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 덕분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오디션 쇼였다. 여기서 트럼프는 마음에 든 지원자에게는 "통과(PASS)"를, 그렇지 않은 지원자에게는 "해고(FIRE)"를 외쳤다. 어쩌면 그에게 정치와 외교란 이러한 리얼리티쇼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칭찬해야 할까. 최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이 좋은 소재다. 예컨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번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로써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한미 관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대미 투자를 확대해 미국 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이러한 한미 상호 윈윈의 방향을 이끈 대통령님의 리더십에 감사드립니다."
백악관
둘째, 동의하라(Agree)! 트럼프는 '동의'에 목마르다. 그는 미국의 주류 언론과 야권이 자신이 추진하는 모든 사안에 이유 없이 반대한다고 불만을 토로해왔다. 그러나 그의 글로벌 어젠다 중에는 한국의 국익과 일정 부분 맞물리는 사안도 있다. 한국이 특정 어젠다에 전략적으로 동의할 경우, 다른 현안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이 좋은 예다. 전쟁의 장기화는 한국에도 에너지 가격 불안, 글로벌 공급망 차질, 북한 참전과 북·러 밀착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마침 트럼프는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15일 알래스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휴전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회담에서 미·러 정상회담의 성과를 평가하며 "전쟁을 조속히 끝내고 세계 평화를 앞당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한다면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정책인 '아브라함 협정'에 대한 지지도 효과적일 것이다. 이는 한국의 중동 외교 다변화, 에너지 안보 강화, 방산 진출 확대라는 직접적인 이익과도 맞닿아 있다. 아브라함 협정은 미국의 중재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도록 한 일련의 합의다. 1기 집권 때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 4개국이 참여했고, 2기에는 시리아,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공개 지지를 통해 한국은 중동 외교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에너지·방산 분야에서 실질적 이익을 모색하고, 이재명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협력국이라는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제안하라(Suggest)! 한국이 먼저 판을 짜고 구체적인 안을 제시할 때, 협력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다. 쉽지 않았던 한미 관세 협상에서도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 제안이었다.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해 미국 현지에 신규 조선소를 건설하고, 기존 조선소를 인수·확장하며, 선박 건조와 공급망 재구축, 유지·보수·운영(MRO), 인력 양성 등을 추진하는 구상이다. 조선업 분야의 한미 협력은 트럼프가 오래전부터 주목해온 숙원 사업이었고, 한국이 여기에 구체적 제안을 내놓으며 협상의 물꼬를 텄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한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트럼프의 또 다른 숙원은 미완으로 끝난 김정은과의 협상 타결이다. 그는 지난달 백악관에서 한국 측 협상단에 "김정은은 잘 지내고 있나"라고 물으며 북미 정상회담 '시즌 2'에 관심을 드러냈다. 시즌 1이 문재인 정부의 중재로 성사됐다면, 지금은 북·미가 직접 협상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창의적이고 실질적인 안을 미국 측에 선제적으로 제시한다면, 트럼프의 대북 협상 의지를 견인하고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일정 부분 확보할 수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준비하고 있다는 '트럼프를 만족시킬 북한판 마스가'는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연합뉴스
끝으로, 요청하라(Seek)! 앞선 칭찬·동의·제안은 결국 요청을 위한 '빌드업'이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의 국익과 직결되는 요구를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전달해야 한다. 일단 관세 합의 이후 양국 간 경제·통상 관계에서 추가적인 불확실성이 발생하지 않도록 확약을 받아야 한다.
연합뉴스안보 분야에서는 최근 쟁점이 된 '동맹 현대화'가 추진되더라도, 그 범위와 속도가 한국의 안보 이익을 훼손하거나 한반도 방위 태세를 약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국방비 지출 확대 요구가 제기될 경우, 한국이 한미동맹을 위해 기여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음을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서 과도한 인상은 국내 여론 악화로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설득해야 한다.
또한 북미 대화 재개는 긴밀한 한미 협력 속에서 추진되며, 이를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선순환 구조로 연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이 한국에 적극적인 대중국 견제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그로 인한 한국의 경제·외교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요청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와의 협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떤 수모든 강압이든, 이것이 제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가랑이 밑이라도 기어갈 수 있다. 그게 뭐 중요하냐." 트럼프 대통령이 '만만하지 않다'는 지적에는 "저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그 각오와 자신감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이익을 지키고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형주 칼럼니스트
- 전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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