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임진각 지나 금강산전망대까지…평화 위한 통일걷기 12박 13일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핵심요약

2025 통일걷기 마지막 날, 최북단에서 전쟁의 아픔 보다
남북에 나뉜 '고성', 실향의 아픔이 서린 땅
사람이 없어 더 장관인 동해와 이를 막아선 철조망
"평화 교류 위한 발판…내년에도 또 걸을래요"

9일 2025 통일걷기 참가자들이 출발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백담 기자9일 2025 통일걷기 참가자들이 출발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백담 기자
"통일걷기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평화로 가는 길이 열릴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또 걷겠습니다."
 
2025년 통일걷기 마지막 날인 9일 오전 7시, 강원도 고성군 마달리 주민대피소 앞에는 '평화의 길'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파란 조끼를 입은 순례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난 13일 동안 DMZ를 따라 걸어온 이들의 어깨를 시원한 바람이 부드럽게 감쌌다. 발걸음에는 피로가 묻어났지만, 표정만큼은 한결 가벼웠다.
 
남북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DMZ)를 횡단하는 '통일걷기'는 지난달 28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시작해 이날 강원도 고성군 마달리에서 마지막 일정을 진행했다.

시간이 멈춘 민통선…짙은 실향의 기억

마달리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곧 민가가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끝없이 이어진 들판과 잘 가꾼 밭, 그리고 오가는 이 없어 문을 닫은 가게들이었다. 한 시간가량 걷다 보니 '끝집 오징어' 간판이 보였고, 그 뒤로는 굳게 닫힌 철문이 도로를 가로막았다. 이곳이 바로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의 관문, 제진 검문소다.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제한되는 곳으로, 사전에 군과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만 통과할 수 있다.
 
강원도 고성군은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측과 북측에 각각 같은 이름을 가진 '고성군'이 존재한다. 전쟁 전까지 하나의 생활·경제권이었지만, 분단으로 인해 마을과 가족 그리고 농지와 어장이 갈라졌다. 남쪽 고성에는 북쪽 고성을 고향으로 둔 실향민이 많아 그 아픔이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검문소를 통과하자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은 듯 흙과 넝쿨이 덮인 길이 나타났다. 민통선 안쪽의 풍경은 분단의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민간 차량 대신 군용 트럭의 이동이 잦았고, 차량으로만 이동이 가능했던 일부 구간에는 '지뢰 제거 작업 미완료' 경고판이 서 있었다.

9일 강원도 고성군 제진검문소 앞 끝집 오징어 간판이 눈에 띈다. 백담 기자9일 강원도 고성군 제진검문소 앞 끝집 오징어 간판이 눈에 띈다. 백담 기자
길 너머로 동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물어 더 푸르고 고요한 바다가 파란 수평선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참가자들의 '와' 하는 탄성이 퍼졌다. 그러나 그 눈앞을 가로막는 건 높게 둘러친 철조망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니요. 얼른 평화가 와서 이 철조망이 해체되고, 국민들에게 개방됐으면 좋겠습니다." 한 참가자의 목소리가 취재진의 귀에 닿았다.

최연소 참가자인 김성영(11) 군은 "지난번에도 아빠를 따라 평화걷기에 참가했는데, 이번에도 걷고 싶어서 왔다"며 "힘들었지만 걸으면서 철조망을 보니 우리나라의 분단된 모습에 슬펐고, 운동도 되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전쟁과 자연이 공존하는 금강산 전망대

전체 일정의 종착지는 우리나라 최북단 금강산전망대였다. DMZ 내부 군사보호구역이 포함된 특수지역으로, 유엔군사령부의 관리를 받아 취재진의 접근도 제한된다. 행사를 마련한 통일걷기 측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북한 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과 해금강을 비롯한 북측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녹슨 구조물과 끊어진 길 위로 아픈 전쟁의 기억과 여전히 끝나지 않은 상흔이 겹쳐져 있고, 그 곁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고 전했다.

9일 2025 통일걷기 참가자들이 민통선 내부로 들어왔다. 백담 기자9일 2025 통일걷기 참가자들이 민통선 내부로 들어왔다. 백담 기자 

"걷다 보면, 평화의 길이 생길 거라 믿어요"

사단법인 통일걷기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올해로 9회를 맞았다. CBS가 공동 주관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 등 범여권 국회의원 56명이 공동 주최했다.
 
해단식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DMZ박물관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평화를 위해 걷는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져, 언젠가 진짜 평화의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행사를 처음 제안했던 이인영 의원은 "통일걷기의 마음은 몇몇 사람들의 것이 아닌, 모두의 마음"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 백범 김구 선생, 노무현 전 대통령, 김근태 전 국회의장 등 먼저 가신 분들과 함께, 흔들림 없이 간절한 바람으로 통일을 위해 걸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다시 평화를 만들고, 통일을 마음의 중심에 세우며 걸었다"고 덧붙였다.
 
12박 13일 전 구간을 완주한 박승찬 청주시의원은 "첫날에는 너무 힘들어 실제로 기절하기도 했다"면서도 "걸을수록 통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고, 내년에도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2017년 첫발을 내디딘 통일걷기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윤석열 정부 시절 남북 통신연락선 차단 등으로 중단과 축소를 겪었다. 그러나 정권 교체 후 처음 열린 올해 행사를 진행하며 주최 측은 "이제 다시 평화와 교류의 흐름을 이어갈 발판을 마련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매년 이런 행사가 이어진다면 평화로 가는 길을 앞당길 수 있고, 아름답게 보존된 자연이 관광지로서 부상할 가능성도 크다는 기대가 나온다. 최종윤 통일걷기 이사장은 취재진과 만나 "사람 손이 닿지 않아 잘 보존된 자연환경이 DMZ의 가장 큰 자산"이라며 "관광 활성화와 평화의 상징 공간으로 발전시킬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CBS 합창단이 9일 dmz 박물관에서 기념 공원을 하고 있다. 백담 기자CBS 합창단이 9일 dmz 박물관에서 기념 공원을 하고 있다. 백담 기자
한편, 이날 해단식에서는 CBS 어린이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행복합니다'와 '아름다운 나라'를 합창하며 행사장을 따뜻한 울림으로 채웠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