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한샘빌딩에 마련된 순직해병 특검 사무실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특검 수사선상에 오른 주요 피의자들의 '위증' 혐의 수사에 대해 촉각이 곤두세워지고 있다. 내란특검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부총리 등 국회에서 위증한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검토 중인 가운데, 순직해병 특검도 'VIP 격노' 진술을 뒤집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의 혐의에 대해 들여다볼지 주목된다. 다만 조 전 원장과 김 전 차장의 경우 현행법상 위증 혐의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해 법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실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조 전 원장과 김 전 차장은 최근 특검에 출석해 사건 발생 2년 만에 이른바 'VIP 격노설'을 인정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국회 등에서 'VIP 격노설'을 부인해 온 바 있다.
조 전 원장(당시 국가안보실장)의 경우 지난 2023년 8월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격노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당시 조 전 원장은 "안보실장과 또 국방부 장관도 아니라고 얘기를 했다"며 "말만 했을 뿐 아니라 보도자료까지 냈다. 그런 점도 감안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윤 대통령에게 채 상병 조사 관련 보고를 했느냐'는 질의도 이어졌지만 조 전 원장은 재차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조 전 원장은 "수사결과보고서는 첫 번째 것도 그렇고 두 번째 것도 그렇고 제가 본 적이 없고 가지고 있지 않다"며 "저희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서 그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제일 잘하는 방법은 사실 안보실장인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부인하는 것은 물론, 자신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적극 피력한 셈이다.
김태효 전 차장은 지난해 7월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격노'와 관련해 "저희 앞에서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내신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런 일로 사단장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 할 수 있겠냐 류의 내용을 들은 적 있습니까'라는 질의에는 "저도 없고 그 주제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없었다"고 답했다.
국회에서 끝까지 모르쇠로 잡아뗀 조 전 원장과 김 전 차장은 특검 수사에선 입장을 바꿨다. 이밖에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은 앞서 국회와 법정에서 "대통령 주재 회의 내용은 안보 사안"라며 진술을 거부해 왔다. 하지만 특검에서 윤 전 대통령이 채상병 사건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격노하며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을 크게 질책했다고 진술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순직해병 특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이들이 뒤늦게 윤 전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인정하면서 특검은 실체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말이 바뀐 이들의 '위증 혐의' 수사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에서의 위증 혐의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서 이뤄진 발언이어야 하고, 증언에 앞서 선서를 해야 힌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는 선서한 증인 또는 감정인이 허위의 진술(서면답변을 포함한다)이나 감정을 했을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위증죄에 대한 처벌도 국회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고발을 토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발언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뤄졌으며, 선서도 따로 없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공직자가 국회에서 명백히 거짓말을 할 경우 처벌 조치를 구체화하는 법령 정비가 필요하단 분석도 나온다.
다만 특검 수사선상에 오른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의 경우 모해위증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해 10월 군사법원에 대한 국정감사 과정에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에게 'VIP 격노설' 관련 발언을 한 적 있냐"는 질문에 김 전 사령관이 "없다"고 답해 위증 혐의가 있다며 고발한 바 있다.
특검팀은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의 증언도 들여다보고 있다. 박 전 보좌관은 지난해 9월 박정훈 대령 항명 혐의 재판 증인신문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고 언급한 사실이 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장관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사건 기록 이첩 보류 결정은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닌 국방부 내부 의사결정에 의해 이뤄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 전 보좌관의 진술이 사실이 아닐 경우 모해위증이나 위증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달 18일 김 전 사령관에 대해 모해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지난달 22일 법원이 기각한 바 있다. 특검팀은 김 전 사령관을 다시 소환해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내란특검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부총리 등 국회서 위증한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위증한 국정조사 청문위원회가 해산된 상황에서 위증죄 처벌을 위해서는 이를 수사 대상에 포함하는 특검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