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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625년짜리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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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국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서던 10여 년 전, 외교부 고위 관료에게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가치를 물어본 것이 아니라 국익을 키워갈 수 있는 현실 외교의 방향을 물어본 것이다.
 
망설임도 없이 그는 '미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더 확실히 해야 한다'고 답했다.
 
'입장을 분명히 해야 동맹국인 미국의 호의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최근 타결된 한미간 관세 협상에서 동맹국의 호의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EU 등 전통 우방을 몰아 세운 반면 중국에게는 관세를 100% 이상 깎아주고 협상 시한까지 다시 연장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혈맹'인 한국의 협상 결과를 보자.
 
상호관세와 자동차 품목 관세를 15%로 '인하'하고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 15%는 낮춘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던 관세를 올려 매긴 것이다.
 
2012년 타결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미간 관세는 거의 모든 품목에 대해 관세가 0%였다.
 
그랬던 관세가 앞으로는 15%니 내린 것이 아니라 오른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더구나 15% 관세는 한국산에만 부과되고 미국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불평등 협상 사례로 역사에 남을 정도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부분도 문제다.

미국 정부가 집계한 지난해 한국의 대미 투자액이 5억 6천만 달러이니 3500억 달러투자 약속은 625년 짜리 청구서다.
 
일본은 지난해 181억 달러를 실제 미국에 투자해 5500억 달러 투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30년을 채워야 하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짧다.
 
EU는 6천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는데 지난해 유럽 지역 전체 대미 투자액이 967억 달러였다. 6년 남짓만 채우면 된다. 즉 유럽은 트럼프 임기 동안 평소 규모에서 조금만 더 얹으면 되는 투자 약속이다.
 
투자 규모도 막대한데 투자처를 미국이 정하고 투자 이익도 90%를 미국이 가져가기로 한 대목에서는 눈과 귀를 의심하게 된다.

정상적인 투자란 투자자가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 책임 아래 투자처를 정하고 이익이 나든 손해가 나든 그 결과를 지분에 따라 나눠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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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협상에서 트럼프는 '한국은 돈만 대라'는 식이니 '날강도'가 따로 없을 정다.
 
한국 정부는 '3500억 달러 가운데 실제로 돈을 내는 출자는 극히 작은 부분이고 대출과 보증이 대부분이 될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해명을 미국이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도 한국과 비슷한 해명을 앞서 내놨다가 미국으로부터 '분기마다 투자 실적을 파악해 (미진하면) 관세를 다시 올릴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막대한 투자를 미국에 퍼주게 되면 한국 경제는 휘청일 수 밖에 없다.
 
수출 대기업들은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워 미국인을 고용해 미국산 부품으로 제품을 만들테니 기존 한국의 협력업체들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국내 일자리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는 한국 제조업의 쇠퇴다.
 
경쟁력 부족으로 자체 시장을 내준 미국 자동차, 철강 신업등을 살리기 위해 한국 경제가 희생되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수입을 미국 국민 한 사람에 600만원 정도씩 나눠줄 것이라는 뉴스는 이웃의 주머니를 털어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문제는 이런 청구서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 이달 안에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한국에 방위비 증액 요구를 할 것으로 에상된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등도 '동맹의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주한미군 역할 변화에 따라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초기지'로 떨어질 위험성이다.
 
대만이나 동남아에서 미중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개입하게 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동맹이라는 명분 때문에 국익을 내줄 수는 없다. 한번은 양보할 수 있어도 이를 반복할 수는 없다.
 
국익 중심의 유연한 실리 외교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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