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윤창원 기자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경제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재계는 "주주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하나로 합치될 수 없는데 경영 판단 때마다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며 경영권 보호를 위한 후속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는 배임죄 완화 등을 추후 논의하겠다는 입장인데 추가 입법시 재계의 입장이 얼마나 반영될지 주목된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 회사→회사·주주…감사위원 선임시 의결권 3% 제한
국회는 3일 기업 이사가 충실 의무를 다해야할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감사위원 선임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과 상장회사의 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전환하는 내용도 담겼다.
기존 상법은 사내이사 선임 때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상해 3%까지 의결권을 제한했지만 이번 개정으로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출시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게 됐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여야는 다만 이사 선출시 소액주주가 표를 모아 특정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는 '집중투표제' 도입과 감사위원 수를 확대하는 방안 등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개정안은 지난 3월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덕수 전 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됐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중 당선시 취임후 상법개정안을 이른 시일내 처리하겠다고 밝혔고,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는 물론 기존 상법개정안엔 포함되지 않았던 '3%룰' 등이 추가된 '더 강해진 상법개정안'이 처리되게 됐다.
재계 "상법 개정 취지엔 공감…경영 활동 위축 불 보듯"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6단체 부회장단과의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기웅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이인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송언석 원내대표,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연합뉴스재계는 "상법 개정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개정안 시행시 경영 활동 위축은 불 보듯 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8단체는 상법 개정안 통과 후 입장문을 내고 "자본시장 활성화와 공정한 시장 여건의 조성이라는 법 개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고, 3%룰 강화로 투기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조항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다. 개별 주주의 이해관계가 하나로 모아질 수 없는 경영 판단시 회사의 이익과 '뭉뚱그려진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보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올해 초 민주당 주도로 상법 개정이 추진될 때 부터 꾸준히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단기적으론 손실이 예상되는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투자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어떤 주주는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투자를 원할 수 있고, 어떤 주주는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을 원할 수 있는데 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 기업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연합뉴스이번 개정안에서 추가된 3%룰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재계에선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진 SK와 소버린 자산운용 간 경영권 대결의 재현을 우려한다.
당시 소버린은 보유한 SK 주식 14.99%를 펀드 5개로 쪼개 2.99%씩 의결권을 행사하고 소버린 측 인사를 감사위원으로 앉힌 뒤 최태원 회장 등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했다. SK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섰고, 소버린은 경영권 확보엔 실패했지만 2년 4개월만에 지분 전량을 매각하며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개정안에서 집중투표제가 빠진 건 '불행 중 다행'이라는 평가가 다수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3%룰과 집중투표제가 함께 시행될 경우 굴지의 대기업들도 경영권 방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공청회 등에서 논의를 한다고 했는데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는 신중하게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계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 조속히 이뤄져야"
재계의 이런 우려를 의식한듯 이후 정치권에선 배임죄 완화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상법상 특별배임죄 폐지 및 상법에 경영 판단 면책 판례를 명기하는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민주당도 이후 경제계 의견을 수렴해 정책과 입법에 반영해갈 것이라며 보완 입법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재계에선 대주주에게 낮은 가격에 신주를 발행하는 '포이즌필'과 특정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차등의결권', 1주만 보유하고 있어도 주총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등 경영권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일본 등은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을 모두 도입한 바 있다.
경제8단체는 "국회에서도 경제계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필요 시,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경영 판단 원칙 명문화와 배임죄 개선,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등에 대한 논의가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