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기고]그들의 오늘이 우리의 내일이 되지 않도록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러–우크라이나·이스라엘–이란 전쟁, 지도자들의 욕망과 시민의 희생
한반도, 평화를 위한 외교는 선택이 아닌 생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뉴스에서는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기억해야 할 두 장면이 있다. 첫 번째 장면의 주인공은 영국 BBC 우크라이나 서비스 기자 미로슬라바 페차(Myroslava Petsa)다. 그는 지난 6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현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트럼프에게 던질 질문은 이미 마음속에 정해 두었지만, 수많은 취재진 사이에서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입고 있던 검정 재킷을 벗고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어두운 정장차림의 기자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눈에 띄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트럼프는 "하얀 셔츠 입은 기자!"라며 그를 지목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판매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페차 기자는 곧장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트럼프는 바로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어디서 오셨죠?"갑작스러운 개인적 질문에 페차 기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차분히 답했다. "저는 우크라이나 출신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폴란드에 머물고 있고, 남편은 군인으로 전장에 있습니다."
 
러시아에 납치된 우크라이나 아동 송환을 요구하는 시위대. 연합뉴스러시아에 납치된 우크라이나 아동 송환을 요구하는 시위대. 연합뉴스
트럼프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와, 정말 힘든 상황이겠군요. 남편에게 안부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나서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제공할 수 있을지 검토해 보겠습니다." 일부 매체는 이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트럼프가 이 기자에게 연민을 표했다'고 전했다.
 
두 번째 장면의 주인공은 이란 국영방송 IRIB의 앵커 사하르 에마미(Sahar Emami)다.그는 6월 16일, 테헤란 북부 IRIB 본사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규탄하던 중, 갑작스러운 공습이 스튜디오를 강타했다. 천장이 무너지고 검은 연기가 밀려들었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에마미는 당혹과 공포 속에서 급히 대피했다. 그 모습은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생중계됐다.
 
그러나 몇 분 뒤, 에마미는 다시 화면에 나타났다. 공습을 받지 않은 다른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재개했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이 떠나온 스튜디오에서 일부 동료 기자들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후 그는 이란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이란 정부 관계자들은 폭격에도 굴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 다시 선 그의 '용기'를 추켜세웠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란 핵시설 공습에 대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란 핵시설 공습에 대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두 장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잠시 카메라를 '줌 아웃'해 보자. 지금 세계는 두 개의 전쟁을 겪고 있다. 하나는 3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다른 하나는 미국의 개입으로 확전되고 있는 이스라엘–이란 전쟁이다.
 
먼저, 푸틴의 불법 침략 야욕으로 시작된 러–우 전쟁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군사 장비 지원과 200조 원에 이르는 자금이 초기 우크라이나를 버티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원은 점차 줄었고, 러시아의 공세는 다시 거세지고 있다.
 
'24시간 내 종전'을 장담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당신은 카드가 없다"고 윽박지르며, 그들의 '희토류'를 탐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모호한 메시지를 반복하며 푸틴의 야욕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3년간 최소 1만 2,600명의 민간인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이란 전쟁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란은 스스로 '핵 개발 의혹'이라는 원죄를 벗지 못했지만, 최근 이스라엘의 공습은 부패 스캔들과 안보 실패 책임론에 몰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정권 위기 돌파용'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 공습을 용인한 트럼프는 직접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며 기름을 부었다. 이번 전쟁으로 천여 명이 넘는 시민이 죽거나 다쳤다.

이스라엘의 23일 공습 이후 촬영된 포르도 핵시설 위성사진. 막사르테크놀로지 제공이스라엘의 23일 공습 이후 촬영된 포르도 핵시설 위성사진. 막사르테크놀로지 제공 
우리는 전략과 셈법, 지정학적 여파라는 이름 아래 이들 지도자들의 '전쟁 놀음'을 열심히 분석한다. 그러나 정작 무고한 시민의 피해에는 '줌인'하지 못하는 것이 전쟁의 현실이다.그런 가운데 우연히 포착된 두 장면, 우크라이나 여기자와 이란 국영방송 앵커의 모습은 전쟁의 가려진 단면을 보여주는 '스냅샷'이었다.
 
밖에서 보면, 한반도는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화약고'다. 바꿔 말하면, 지금 이 땅은 무엇보다 '평화'가 절실한 곳이라는 이야기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회 추경안 시정연설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일도 더없이 중요하다"며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회복을 강조하는 추경안 연설에서도 '평화'에 힘을 줘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흔들리는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오늘이, 우리의 내일이 되지 않도록. 평화를 위한 외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박형주 칼럼니스트박형주 칼럼니스트 박형주 칼럼니스트
- 전 미국 VOA 기자, 『트럼프 청구서』 저자

※ 외부 필진 기고는 CBS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

0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전체 댓글 0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