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민주당 주도의 상임위원장 선출에 반대하며 퇴장해 빈자리가 보이고 있다. 윤창원 기자정권 교체로 소수야당이 된 국민의힘이 거여(巨與) 드라이브에 맥을 못 추고 있다. 국회 전통상 '예결위·법사위는 제2당 몫'이라며 실랑이를 벌였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을 강행하면서, 사실상 완패했다는 평가다. 내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을 벼르는 여당을 막아설 뾰족수 또한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다.
與, 우 의장 승인下 상임위원장 4명 '단독 선출'
국회는 27일 오후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운영위원장(김병기·3선) △법제사법위원장(이춘석·4선) △예산결산특별위원장(한병도·3선) △문화체육관광위원장(김교흥·3선)을 각각 선출했다. 이들 4명은 모두 여당인 민주당 소속이다.
당초 예정에 없던 이날 오후 본회의는 추가경정예산(추경)안 등의 신속 처리를 위해 상임위원장을 일괄 선출해야 한다는 민주당 측 요구를 우원식 국회의장이 받아들이면서 열렸다.
대선 이후 공수가 바뀐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그간 상임위 재배분 문제를 놓고 대립해왔다. 양당 원내지도부는 이재명 대통령이 추경 시정연설에 나선 26일 오찬 회동을 가졌고, 물밑 접촉을 이어왔지만 접점을 찾는 데엔 실패했다.
국민의힘은 의석수만 167석에 달하는
거대 여당이 법사위·예결위를 독식하는 것은 '1당 독재'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17대 국회부터 다수당과 제2당이 국회의장·법사위원장을 나눠 맡으며 원내 균형과 견제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는 논리다. 자신들이 여당이었던 18대 당시 83석 민주당에 법사위원장을 '양보'했었다고도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기존에 완료된 원 구성을 뒤집을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2년 단위 상임위원장 배분이 이미 끝났을 뿐 아니라, 다음달 4일까지인 6월 임시국회 회기 내 추경안 처리를 마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 본회의시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 상정만은 막아달라는 국민의힘의 요청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 시작과 동시에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착잡하게 바라보던 우 의장은 "(비상계엄 이후)
지난 6개월간 국민이 감내한 희생·고통을 생각하면 일할 준비에 해당하는 상임위 구성은 하루라도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협상 양상을 볼 때 며칠 더 말미가 있다고 정리될 상황은 아니었다는 취지다.
野 "李대통령 말한 소통, '쇼통'이었나"…羅, 철야 농성도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맨오른쪽)가 27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 철회, 법제사법위원장 반환을 촉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의원 50여 명은 즉각
'묻지마식 의회폭주 민주당식 협치파괴'라는 피켓을 들고 규탄에 나섰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민주당에게 대화란 요식행위에 불과한 모양이다. 소통은 '쇼(show)통'"이라며 "정권 출범 한 달 만에 정치가 무너지고 협치가 무너진 모든 책임은 바로 민주당에 있다"고 맹공했다.
민주당이 잠시 유보한 '대통령 형사재판 중지법'·'대법관 증원법'의 재추진 등 당정의 '사법부 협박'이 일상화될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거부권도 유효하지 않은 만큼 '악법'들이 일방 처리될 거라는 우려다.
5선의
나경원 의원은 법사위원장의 반환 및 김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하며 국회 로텐더홀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나 의원은 "'이재명 민주당'은 범죄혐의가 명백한 총리 후보로 국회를 모욕하고 견제의 마지막 보루인 법사위마저 강탈했다. 이게 정상적인 국회인가"라며 "완전한 독재체제로 가고 있다. 정치정상화를 위한 투쟁에 함께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에서는 특히 이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이제는 제가 을(乙)"이라며 야당의 협조를 구한 직후 이같은 속도전이 펼쳐졌다는 데 분개하고 있다. 박성훈 원내대변인은 "앞에서는 협치 운운하고 뒤로는 움켜진 권한을 한 치도 내놓지 않겠다는 '양두구육 정치'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소수당 국힘, '여론전' 강조하지만…'김민석 인준' 못 막을 듯
다만,
107석의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제지할 방안은 딱히 없는 게 현실이다. 김 후보자를 겨냥한 '10대 결격사유' 류의 공세도 타격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는 최근 국민의힘이 여론전을 부쩍 강조하는 이유기도 하다.
박 원내대변인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식) 인사청문회는 끝났지만, 국민의힘에서 국민청문회를 이어갈 것"이라며 "5억 수입과 13억 지출로 (비는) 8억에 대한 제대로 된 소명이 없었다. 증명되지 못한 부분들을 제대로 검증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여론도 야당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3~25일 전국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에 따르면, 김 총리 후보자 인선에 대해 '잘했다'는 평가(45%)가 '잘못했다'(31%)는 응답을 앞섰다.
야당 일각에서는 정부가 헌법재판관 후보군이었던 이승엽 변호사를 지명하지 않은 조치나, 현역 의원을 중점 배치한 장관 인선을 두고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논란이 된 인사는 유임된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정도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당이 소위 '똥볼'을 차기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