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트럼프 행정부의 오락가락 관세정책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환율은 전날 11.2원 내린 1364.4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장중 1360.4원까지 하락했는데,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에 최저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예 기간을 다소 연기했지만 유럽연합(EU)에 50% 관세를 예고하고, 앞서 무디스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향과 이어지는 재정적자 확대 전망도 달러 약세로 연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 인덱스는 연초 대비 8% 이상 하락했다. 블룸버그 달러현물인덱스도 2023년 12월 말 이후 최저 수준이다.
지난주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야간거래종가 기준으로 2.4% 올라 절상폭이 아시아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컸다.
한미 환율협상에서 원화절상 압박이 있을 거란 관측도 원화 강세에 힘을 받게 한다. 1400원대가 뉴노멀로 여겨졌던 환율은 지난 14일 한미가 외환시장 운영 원칙에 대한 논의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1390원대로 내려왔었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날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경제정책 영향과 대응 방향' 세미나에서 "조만간 미국은 관세와 방위비를 지렛대 삼아 환율조정 전략을 추진할 전망"이라며 "한국 등 개별 국가에 우선적으로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 평균 일일 변동폭은 23원대에 달한다. 지난 2일에는 고가와 저가 사이 약 49원 넘게 벌어지기도 했다. 대만이 미국과 관세 협의를 공식화하면서 대만 달러 가치가 급등했던 때로, 아시아 주요 통화의 강세가 원화 절상 압력을 높였다.
미국이 다음 달 내놓을 예정인 환율 보고서가 가늠자로 여겨진다. 미국을 상대로 큰 규모의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을 보고서에서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해 압박을 해왔다.
원화 강세 이어지면…수출·성장률 먹구름
원화 강세 현상이 지속될 경우, 한국 수출과 성장률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과거 플라자 합의 때 환율을 인위적으로 절상한 뒤 장기 침체를 겪은 일본의 사례가 회자되기도 한다.
장보성 자본연 연구위원은 세미나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로 국내 GDP 규모는 약 0.5% 감소하고, GDP 성장률도 약 0.5%포인트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자동차와 철강에 25%, 기타 품목에는 기본관세 10%가 부과되는 것을 전제로 추정한 것으로, 미국이 90일 유예한 25% 상호관세가 예정대로 발효될 경우 경제 충격은 더 커질 것으로 장 연구위원은 전망했다.
장 연구위원은 "무역 불확실성 확대는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직간접적인 효과로 국내 성장률이 약 1%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전날 미국의 관세 정책이 지속될 경우 올해 수출액이 전년에 비해 평균 4.9% 감소할 것이라는 수출기업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신한투자증권 오한비·김성환 연구원은 "환율 절상이 수출 채널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내수까지 동반 위축되면 국가 성장 기반 자체가 붕괴한다"며 "수출 중심 국가는 정책적으로 내수 부양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에 직면하게 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