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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프랑스 몽니'로부터 체코원전을 지켜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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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연합뉴스체코 두코바니 원전 전경. 연합뉴스
원전은 한국 정치권에서는 민감한 주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정권 초반에 과감하게 '탈원전' 정책을 내세우면서 정치 쟁점화가 됐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원전 수출에 대한 '이중 잣대'는 후반부로 갈수록 정권의 아킬래스건이 됐다. 청와대가 중심이 돼 탈원전 정책을 적극 홍보하는 바람에, 원전 수출을 언급하는 순간 무조건 비난을 받는 상황이 연출됐다.

2021년 5월 21일(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당선 후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할 때 모순은 극대화 됐다. 두 대통령은 공동합의문에서 "원전산업 공동 참여를 포함해 해외 원전 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안보·비확산 기준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는데, 기후·환경단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와 엇갈린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를 출입했던 시절로 돌아가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상당수 참모들은 이 주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곤혹스러워 했다. '탈원전은 국내용, 원전수출은 국외용'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이 본인들이 느끼기에도 궁색하게 들렸던 것이다. 에너지 정책이 그 자체로 정권의 '캐치프레이즈'가 됐을 때 모순적 상황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6일 체코행 비행기 안에서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만의 쾌거'라는 체코 신규 원전 최종 계약을 코 앞에 둔 시점이었다. 체코 정부의 초청을 받아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출장을 가던 중 체코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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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6조원 규모의 체코 원전 2기 건설을 한국수력원자력이 따내자, 원전강국을 자부하던 프랑스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끈질기게 발목을 잡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한수원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체코 반독점사무소(UOHS)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기각당했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포기하지 않고 '물귀신 작전'으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가처분 인용까지 받아냈다.  

K원전의 최대 강점은 가성비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한국형 원전의 건설 단가는 ㎾당 3571달러로 미국(5833달러)과 프랑스(7931달러)에 비해 저렴하다. 무려 8년간 진행된 공개 입찰을 통해 체코가 한수원을 선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싸게, 제 시간에 짓겠다는 한수원의 기술력에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도 프랑스의 EDF도 무릎을 꿇은 것이다.

프랑스는 왜 물귀신 작전까지 쓰면서 몽니를 부리는 걸까. AI의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유럽은 물론 전세계에서 원전 확대는 불가피하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에 이어 프랑스 EDF 등 경쟁자들이 한국을 견제하며 몽니를 부리는 이유다. K원전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어깃장처럼 외부의 공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끈질긴 조치도 이번 계약 자체를 깨려는 목적보다는, 추후 유럽지역의 원전 건설에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문재인 정부가 처한 탈원전 딜레마에 깨달음이 있었던 것일까. 최근 정치권은 대선 레이스에도 불구하고 이번 체코 원전과 관련해서는 나름 차분히 대응하고 있는 듯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날(7일) 오후 한민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발로 서면 브리핑을 내고 "신속한 문제 해결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 장관들이 체코까지 날아가 망신을 당한 꼴이 됐지만, 책망을 하기 보다는 응원을 보냈다. 대선 과정에서 여러 험한 말들이 오가며 날이 서 있지만, 에너지 문제는 한 발 떨어져 보자는 암묵적 동의가 생기는 듯 하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월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체코 투자 및 비즈니스 컨퍼런스'에서 양국 기업·기관 간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월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체코 투자 및 비즈니스 컨퍼런스'에서 양국 기업·기관 간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 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의 어수선한 정치 상황을 프랑스 등 경쟁 국가들이 모를리 없다. 체코도 올 가을에 하원 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단일대오가 중요하다. 정치 쟁점화를 지양하고 국익의 관점에서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외교력을 발휘해 원전 수주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유럽 한 복판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원전 공개 입찰을 반드시 따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지금처럼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원팀' 기조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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