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보이스피싱 범죄 수익금을 조직에 건네려던 전달책이 택시기사의 기지로 경찰에 붙잡혔다. 고액 수표를 운반하는 피의자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택시기사는 친구와 통화하는 척하며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보이스피싱 범행 수법은 나날이 교묘해지면서 서민경제를 좀먹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금감원) 직원 등을 사칭해 고액 수표를 가로채는 수법이 새로 등장하면서 일부 은행들은 '금감원 사칭' 보이스피싱 범죄를 주의하라는 내용의 경찰 공문까지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8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달 6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20대 남성 A씨를 붙잡았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인 A씨는 이날 오후 12시 30분쯤 피해자에게 7800만 원에 달하는 수표를 받고, 이를 조직에 전달하려다 긴급체포됐다.
A씨를 태운 택시기사 B씨가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고액 수표를 운반하는 A씨의 행동 등을 수상하게 여겨 같은 날 오후 1시 1분쯤 경찰에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기지를 발휘해 의심을 받지 않고 A씨를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B씨는 경찰에 전화를 걸고서 "점심 같이 먹자", "합정역 4번 출구로 오면 된다", "1시 30분쯤 도착한다" 등 친구와 연락하는 척했다. 사실 이는 A씨의 행선지와 도착 시간 등을 경찰에 알린 것이었다.
당시 A씨는 경기 광명시에서 택시를 탄 뒤 피해자가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으로 이동했다. 이어 피해자로부터 수표를 받은 뒤 같은 택시에 탑승해 서울지하철 2호선 합정역 인근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결국 B씨가 기지를 발휘한 결과 A씨는 오후 1시 36분쯤 합정역 인근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경찰에게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는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는 전화를 받고서 A씨에게 고액 수표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에게 접근한 사칭범은 자산 검수를 이유로 들며 수표 전달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가담한 범행 수법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와 유사하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금감원, 카드사 직원 등을 사칭하는 수법으로 수표 등을 가로채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특히 광주경찰청은 지난달 26일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특별 경보'를 발령했다. 광주청은 이와 관련해 "금감원, 검찰이 범죄 연루, 불법자금 조사를 이유로 현금 인출이나 수표를 요구하면 100% 보이스피싱"이라며 "즉시 전화를 끊고 응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에서도 유사 범행이 잇따르자 일부 은행은 경찰로부터 보이스피싱 범행 관련 협조문을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달 25일 관할에 있는 시중 은행에 '보이스피싱 범행 수법 및 협조 사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협조문에는 △카드 배송형 △대환대출형 △지인 대출금 대신 수령형 등이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소개됐는데, 카드 배송형이 금감원 직원 등을 사칭하며 피해액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경찰은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피의자들이 자산 검수를 하겠다며 피해자에게 예∙적금 해지, 담보대출 등을 통해 수억 원 대 피해금을 가로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주로 60대 이상 여성 피해자가 많고, 고액 수표로 인출하며, 인출 목적은 부동산 또는 사업 자금이라고 지시받는다"며 은행 측에 협조 사항을 전달했다. 카드 대출형 보이스피싱 사기와 관련해서는 "피해자가 고액 수표를 출금하거나 입금∙분할을 요구할 때는 경찰 입회를 요청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