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후 이제 한달이 막 지났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 각종 정책·명령에 '반년이 훌쩍 지난 것 같다'는 말도 지나치지 않은 듯 하다.
낮밤없는 '워커홀릭'…강인한 리더십 대내 과시
취임식 날 백악관 근처에 있는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것으로 두 번째 대통령 임기의 첫 일정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그야말로 '워커홀릭' 그 자체였다.
취임식 당일에만 수십개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서명한 그는 이틑날 새벽까지 이어진 축하 무도회에 참석해 이역만리 평택의 주한미군들과 영상통화도 하고, 다시 아침 일찍 출근길에 올랐다.
'미국의 황금기를 만들겠다'며 자국민을 위해 쉴새 없이 일하는 강인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시도 때도 없이 '행정명령·SNS 깜짝 게시·즉석 기자회견' 등으로 새로운 정책·아이디어를 쏟아내면서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대선 전부터 그가 앞세웠던 주요 공약들은 취임 직후 속속 정책들로 가시화됐다. 연방정부 개편, 불법 이민 단속, 관세 폭탄이 이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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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남부국경 단속을 강화하는 행정명령부터 각종 관세, 연방정부 대규모 구조조정 등 대선 전 공약을 현실화시키면서 여론을 주도해 나간 것이다.
'캐나다·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뒤, 이들 국가들이 미국의 북쪽과 남쪽 국경에서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감시 병력을 크게 늘리겠다고 하자 일단 관세를 한달간 유예시켰다.
시쳇말로 미국의 국경 강화에 '손 안대고 코푼 격'을 만들어낸 것이다.
'보편 관세'에서는 일부 후퇴했지만,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한 '상호 관세'를 예고하면서 우방에까지 칼끝을 겨누는 모양새다.
품목별로는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발표한 데 이어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인 자동차·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마저 내놓아 가뜩이나 '리더십 부재' 상태인 한국은 풍전등화의 신세가 됐다.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에 중국은 곧바로 반발했지만, 미국이 추가 조치를 예고한 마당이라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매듭지어질 지는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상호 관세'의 주요 타깃으로 거론되는 유럽연합(EU)도 폭풍 전야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중동 평화 모드에 '우크라이나 해법'에 집중
연합뉴스외교 부문에서는 '운'이 따라준 측면도 있다. 묘하게도 취임에 맞춰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안이 성사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종전 해법에 외교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집권하면 하루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던 발언은 집어삼켰지만, 여전히 6개월안에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종전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플라스틱 빨대'로 유턴하거나 '페니 주조 폐지' 등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얼굴을 내밀면서 '만기친람'의 우려를 사고 있지만, 트럼프 2기 취임 초반 지지율은 1기때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53%였다. 또한 응답자의 70%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기 초반 엄청난 속도와 막대한 양으로 각종 정책을 쏟아내면서 여론 역시 이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지층을 더욱 결집시키는 효과를 내면서 언론과 반대세력을 압박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트럼프의 초기 드라이브에 넋놓고 있던 민주당은 지지자들로부터 벌써부터 '무능한 세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만 트럼프 취임 한달이 겉으로 보이는 것 만큼 마냥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DEI 폐지' 등은 향후 '문화 전쟁' 자초할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관세 문제 못지 않게 바이든 정부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에 쐐기를 박는데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행정명령을 통해 "정부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만을 인정한다"고 선언한 데 이어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여성 스포츠 참여를 금지시켰다. '드래그 퀸'(여장 남성) 공연을 진행한 케네디센터의 이사진을 즉각 해임시키기도 했다.
여기다 국방부를 비롯한 연방 정부 거의 모든 곳에서 'DEI 정책 폐지'가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고 있다.
연합뉴스이는 바이든 정부 등 민주당에서 확대돼온 DEI 정책이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앞세운 일종의 '문화 전쟁'인 것이다.
지난 2022년 6월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이후 미국 사회는 양쪽으로 분열돼 극심한 '문화 전쟁'을 치러왔다. 주목해야할 점은 그 이후 각종 선거에서 드러난 '문화 전쟁'의 승자는 공화당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치러진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와 오하이오 주민투표, 켄터키 주지사 선거에서는 '낙태 이슈'를 전면에 내건 민주당이 승리했다.
'낙태 문제'의 경우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 압승'을 막아낸 이슈였다. 대선 패배 이후 '일보 후퇴'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DEI 폐기'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원도 과격한 정책 추진에 '제동' 걸어
법원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과격한 정책 추진에 속속 제동을 걸고 있다. 트럼프의 '출생 시민권 폐지'에는 곧바로 '노골적 위헌'이라며 반기를 들었고, 일방적인 '보조금 지급 중단' 역시 법원이 수긍하지 않았다.
또한 법원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수장인 정부효율부의 막강한 권한에도 일정부분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연방거래위원회(FTC) 등의 권한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은 향후 권한쟁의심판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나친 '미국 우선주의' 역시 우방국들의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공연하게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히고 파나마 운하 소유권을 놓고 빚은 논란은 여러 뒷말을 남겼다.
캐나다 총리에게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는 발언과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개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에어포스원을 타고 걸프만 상공을 날아간 것도 상식선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평가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발표한 '가자지구 재건' 계획은 주요 내각들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고, 가까스로 찾아온 중동지역 평화 모드에 또다시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여기다 우크라이나전 종접 협상에 전쟁 피해자이자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주변 이해국인 유럽국가들을 배제한 점은 향후 양측간 적지않은 파열음이 발생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머스크 월권 논란' 등 내부 세력 싸움 경고등
연합뉴스충성파로 채워졌다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내부를 위태롭게 보는 시각도 있다. 그 중심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위치하고 있다.
정부효율부 공동수장으로 내정됐던 비벡 라마스와미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돌연 사퇴한 것을 두고도 머스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라마스와미가 오하이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난 것처럼 포장됐지만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스크의 도 넘은 정치 간섭에 유럽 주요국 정상들마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취임식 이틑날 오픈AI 샘 올트먼 CEO 등이 최대 5000억달러가 들어가는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에도 머스크는 "그들은 그만한 돈이 없다"며 딴죽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 월권' 논란에 "그는 똑똑한 사람"이라며 방어막을 쳐주고 있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골수 지지층인 마가(MAGA) 진영과 빅테크 출신 신흥 세력간 다툼이 머지않아 표면화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관세 폭탄'…부메랑은 어디로
트럼프 대통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관세 폭탄'의 부메랑도 어디를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관세 폭탄을 손에 쥔 채 '유예 기간'과 '협상 기회' 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있지만, 미국의 관세 부과가 상대국의 보복 관세로 이어질 경우 미국 역시 인플레이션 등 소비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1월 물가 상승 소식에 자신의 SNS에 "Biden Inflation Up"(바이든이 올려놨다)이라는 짧은 메시지를 남긴 바 있다.
그는 취임 전 경제 부문 공약을 통해 인플레이션 대응, 금리인하 등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지만 취임 직후부터 대규모 관세 부과로 미국내 물가 상승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이 트럼프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트럼프 대통령 본인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점도 아이러니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