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에스엠 클래식스 라이브 2025 위드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레드벨벳 웬디가 노래하는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현장 나가면 저 대표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팀원들이 워낙 열심히 하고요. (일은) 다 똑같이 하는 것 같아요." 본인 담당 업무가 아니어도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부서 간 경계 없이 일하다 보니 그렇다지만, 에스엠 클래식스(SM Classics) 초창기 땐 더했다.
청담동 사옥 시절, 매일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다 보니 카페 직원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실상은 업무의 연속이었다. K팝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만들 수 있는 작곡가를 찾고자 100명 넘게 만났다. 하루에 커피만 15잔 마신 날에는 커피 과다 섭취 시 속이 니글거리고 쓰리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첫 결실인 '빨간 맛'(Red Flavor) 오케스트라 버전이 나온 때가 2020년 7월이다. 현재 미국 아카데미 회원인 박인영 영화 음악감독이 오케스트라 편곡을 맡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이 44인조 오케스트라를 꾸려 연주한 음원이다. 이후에도 서울시향과 함께 SM 대표곡을 오케스트라 편곡해 꾸준히 발매했다.
조인우, 이광일, 강한뫼, 강상언, 김영상, 이나일, 박인영, 정재민 등 다양한 편곡자가 참여한 첫 정규앨범 '어크로스 더 뉴 월드'(Across The New World)가 지난달 나왔다. 앨범 수록곡을 중심으로 K팝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무사히' 치렀다.
CBS노컷뉴스는 18일 오전 서울 성동구 SM 사옥에서 이처럼 다양한 작업을 펼쳐온 SM 클래식스의 문정재 대표를 만났다.
줄리어드 예비 학교를 거쳐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학·석사로 졸업하고 실내악 최고 연주자 과정 및 솔로 최고 연주자 과정을 최우수 졸업한 피아니스트인 그는 지난 14~15일 열린 '에스엠 클래식스 라이브 2025 위드 서울시립교향악단'(SM CLASSICS LIVE 2025 with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을 총괄했다. 소감 질문에 그는 "저는 진짜 (이 시간이) 안 올 줄 알았다"라고 털어놨다.
CBS노컷뉴스는 18일 오전 서울 성동구 S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SM 클래식스 문정재 대표를 만났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첫날은 예술의전당(서울 서초구)에서, 마지막 날은 롯데콘서트홀(서울 송파구)에서 공연했다. 문 대표는 "(SM 클래식스가) SM 소속 아닌가. K팝의 선구자! 그 안에 레이블이 생기면 저희도 그 결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서울시향, 서울대 음대와 같이하고 있다. 클래식 안에서 상징적인 장소 두 군데에 서 보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고, 과감하게 던져봤는데 둘 다 대관 통과가 됐다"라고 웃었다.
'전 세계 최초'의 K팝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준비하면서 "지옥 갔다가 천국 갔다가" 했다. 문 대표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아무 사고 없이 끝내 좋다. 저희가 그려왔던 걸 관객에게 조금이나마 보여드렸는데 관객 반응을 찾아보니 (그 노력을) 느꼈던 분이 꽤 많은 것 같아서 사실 너무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쏟아내는 세세한 분석을 볼 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번 공연에는 83인조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담당했다. '웰컴 투 에스엠씨유 팰리스'(Welcome To SMCU PALACE)를 시작으로 '빨간 맛'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Birthday Song) '나무'(Tree) '으르렁'(Growl) '블랙맘바'(Black Mamba) '하루의 끝'(End of a day) '셜록'(Sherlock·Clue + Note) '필 마이 리듬'(Feel My Rhythm) '메리 유'(Marry U) '헬로 퓨처'(Hello Future) '라이징 선'(Rising Sun) '사이코'(Psycho) '웬 디스 레인 스톱스'(When This Rain Stops) '골든 에이지'(Golden Age) '붐 붐 베이스'(Boom Boom Base)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 '빛'(Hope)을 무대에 올렸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공연인 만큼 팬들을 위해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SM 아티스트의 곡을 폭넓게 다뤘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다 보여주고 들려주려고 했다. 악기도 아낌없이 썼다. △목관악기(피콜로·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 △금관악기(호른·트럼펫·트롬본) △퍼커션(팀파니·퍼커션) △현악기(바이올린 I·바이올린 II·비올라 II·첼로·더블베이스)를 기본으로 두었다.
여기에 곡별로 피아노, 파이프 오르간, 하프시코드, 일렉 베이스 기타 등을 추가했다. 문 대표는 "클래식에 나오는 악기란 악기는 진짜 다 보여줬다. (악기 아이디어가 나오면) '무조건 빌려!'라고 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보여드리냐는 생각이었다"라고 부연했다. 2014년 한국인 최초·여성 최초로 로버트 스파노 지휘자상을 받고 2022년 미국 음악계를 이끌 6인의 차세대 지휘자로 소개된 김유원이 지휘를 맡았다.
첫날인 14일에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다. 넓은 벽면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가 눈에 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문 대표는 "사실 저희 회사 곡들이 굉장히 (연주하기) 어렵다. 30분짜리 두 곡 하는 거랑, 3분짜리 20곡 하는 것 중에 후자가 더 까다롭다. 곡마다 패턴이 다 다르니까. 쉽지 않았지만 서울시향 연주력이 워낙 좋고 저희와 뮤직비디오 촬영도 같이해와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 공연은 너무 힘들었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관객석) 반응이 좋으니까 기운이 났고 '끝까지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얘기를 하셨다"라고 전했다.
예술의전당 공연 땐 곡 분위기에 맞는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다. 조명색을 바꾸고 어울리는 영상을 더하면서 몰입감을 높였다. 콘서트홀의 널찍한 벽면을 최대한 활용했다. 문 대표는 "(벽면) 3면을 다 쓴 건 저희가 처음이 아닐까"라며 "퀄리티(완성도)를 조금 더 높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롯데콘서트홀 공연에는 SM, SM 클래식스, 서울시향을 비롯해 SM 역대 아티스트 엠블럼을 띄웠다. 또한 레드벨벳 웬디가 가창자로 나서 앙코르까지 3곡을 불러 눈길을 끌었다.
모든 부분을 '최고'를 목표로 준비했다. 공연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까지 발매된 오케스트라 버전 음원도 '이 곡 좋으니까 한 번 내 볼까?'가 아니라 '왜 이 곡을 이 시점에서 들려줘야 하는지'를 고심하며 명확한 답을 내렸을 때 비로소 발표했다. SM이 가진 "고급 기술력"을 바탕으로 "가장 좋게 들릴 수 있게" 초점을 맞춰 최대한 "완벽한 상태"로 내려고 했다.
'SM DNA를 유지하는 것'이 오케스트라 작업의 핵심이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자 문 대표는 "일단 음악의 힘, 음악이 주는 감동을 믿는다. 딱 부러지게 표현할 순 없지만, 저희(SM) 음악만의 폼(form, 형식)도 있고 감정적인 스펙터클이 있다. (듣는) 사람의 감정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마디로 지루할 틈이 없다"라며 "진짜 음악에 미쳐있는 집단이다. 어떻게 하면 팬들에게 좋은 음악을 드릴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크로스 더 뉴 월드'의 더블 타이틀곡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문 대표는 "다 저희에게 소중하고 주옥같은 곡이지만 '라이징 선'은 SMP의 정수고, '다시 만난 세계'는 걸그룹 데뷔곡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있다. 두 곡 다 클래식 샘플링을 시도했다는 공통점도 있고"라고 소개했다.
샤이니 민호는 이틀 동안 열린 공연에서 내레이터를 맡았다. 사진 맨 왼쪽이 민호. SM엔터테인먼트 제공지금까지 SM 클래식스가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음원은 SM 대표곡이다. 큰 사랑을 받은 원곡이 있고, 그 원곡을 '잘 아는' 청자가 많다는 소리다. "진짜 음악 좋아하고, 정말 잘 아는" 팬들의 존재는 문 대표에게 "가장 두려운 부분"이었다. 원곡이 가진 임팩트를 유지하면서, 클래식 샘플링을 시도할 경우 곡과의 궁합도 맞춰야 하고, 너무 전형적으로 들리지 않게 하려고 "정말 고생"했지만, 공연에서 청자로부터 '장난해?' '뭐 하는 거야?' 등의 비판이나 불만이 나올까 봐 불안했다고.
다행히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다. 에이치오티(H.O.T.), 에스이에스(S.E.S.), 신화(SHINHWA) 등 1세대 아이돌 곡도 다뤘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나오는가 하면, 공연 실황 음원 발매를 기대하기도 한다. 공연에 만족한 관객 중에는 SM 아티스트도 있다. 이틀 동안 내레이터로 활약한 샤이니 민호는 문 대표에게 직접 연락해 '공연 두 번 다 보길 잘했다'라고 전했다. 문 대표는 "아티스트가 공연을 끝까지 봐준 것도 감사한데… 너무 뿌듯하더라"라고 돌아봤다.
2020년 7월 설립된 SM 클래식스는 곧 5주년을 맞는다. 음원을 지속해서 발표했고, SM 클래식스 소속 아티스트와 작가도 생겼고, 하나의 꿈이었던 K팝 오케스트라 공연을 결국 해냈으니, 적어도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은 벗어난 것 아닐까. 금세 "아니오!"라는 답이 나왔다.
그는 "어쨌든 첫 번째보단 두 번째가 수월해질 수는 있지만 생각이 많아져서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다. '더 많은 걸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저희 A&R은 클래식만이 아니라 국내 곡 데모도 다 듣는다. SM 곡을 알고, 업계를 알아야 결을 맞출 수 있다. 그러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기도 한다. 작가님들도 저희 요구가 익숙해지니 처음부터 곡이 헤비하게 올 때가 있다. '더' 해달라고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덜어달라'고 한다"라고 밝혔다.
물론 지난 5년은 귀중한 경험을 쌓은 시간이다. SM 클래식스는 회사(SM)와 작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데, 작가들이 '클래식스한테 너무 많이 배웠다'라고 할 때 '윈윈'하는 것 같아서 가장 기분 좋다고 문 대표는 말했다. SM과도 활발히 협업 중이다. SM 클래식스는 연말 무대나 단독 콘서트 편곡을 하기도 하고, 발라드에 스트링이 들어가면 녹음실에 가서 디렉팅도 한다.
위쪽부터 '셜록' '필 마이 리듬' '헬로 퓨처' 오케스트라 연주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품이 많이 들고, 준비 기간이 길고, 무수한 변수가 있는, 이 '어려운' 작업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근데 너희는 왜 그런 걸 하는 거야?' 류의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는 문 대표는 "저희가 아니라 아티스트에게 투자하면 돈은 더 벌 거다. 제가 생각했을 땐 음악 회사고 문화 기업이어서 그런 것 같다. 존재하는 음악이라면 다 할 수 있는, 정말 음악에 진심인 회사라서 가능한 게 아닐까"라고 답했다.
이어 "앞으로 다른 엔터사에서 각자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런 퀄리티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건 정말 SM의 자산이다. 너무 자신감 있다, 저희는. 음악의 퀄리티를 보장하기 위해 투자하니 팬분들도 너무 좋아해 주신다"라고 말했다.
다음 공연 계획을 묻자 문 대표는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 너무 하고 싶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레퍼토리를 더 쌓아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클래식스는 클래식만이 아니라, 재즈, 영화 음악, OST도 할 수 있다. 기존 IP를 확장하는 걸 넘어서, 오리지널 트랙으로 만들 수도 있고. 무한 확장과 무한 창작을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라는 포부를 전했다.
"처음으로 여러분들께 콘서트를 보여드린 데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잖아요. 회사는 이 프로젝트로 헤리티지(유산)를 보여줬고, 저희는 (공연) 레퍼토리가 생겼죠. 요 안에서 멈추지 않고 확장하려고 해요. 왜 서울에서만 하느냐는 반응도 있었거든요. 내년이나 후년에는 지역을 넓혀갈 수도 있는 거고, 해외 공연 얘기도 슬슬 나오고 있긴 해요. 보여드렸던 걸 계속 보여드릴 순 없으니,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의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재미있는 시도도 해 보려고 해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