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 변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12·3 비상계엄 당일 윤석열 대통령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을 대통령 집무실에서 만난 후에도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게 추가로 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 측은 '격려 차원의 전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비상조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던 조 원장을 '패싱'했거나, 홍 전 차장을 평소 더 신뢰한 정황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尹, 국정원장 집무실서 만나고도 홍장원에 추가 전화
헌법재판소는 13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에 조 원장을 증인으로 불러 12·3 계엄 전후 상황에 대해 신문했다.
조 원장은 12월 3일 저녁 8시 대통령경호실이 지급한 보안폰으로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윤 대통령이 "어디세요"라고 묻자 조 원장은 "여기 있습니다. 공관에 있습니다. 미국 대사 송별 만찬을 해줬습니다"라고 국내에 있음을 확실히 말했다.
또 윤 대통령이 "미국 안가세요"라고 물어서 조 원장은 "내일 떠납니다"라고 답했다. 조 원장이 12월 18일과 19일 경찰과 검찰에 연일 출석해 진술한 내용을 이날 헌재에서 다시 확인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 변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윤 대통령과 전화를 마치고 약 5분 후 강의구 대통령비서실 1부속실장이 조 원장에게 '지금 (대통령실로) 들어오라'는 취지로 전화했다. 조 원장은 집무실로 가 윤 대통령을 비롯해 모여있던 국무위원들과 만났다.
한편 윤 대통령은 저녁 8시 22분쯤 홍 전 차장과 통화해 '1~2시간 후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전화기 잘 들고 대기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부속실에서 조 원장을 호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부속실에서 조 원장을 오라고 하긴 했지만, 윤 대통령 자신은 조 원장의 "여기 있습니다"라는 말을 해외에 있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홍 전 차장에게 연락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미 조 원장을 대통령 집무실에서 만난 이후인 10시 53분 쯤에도 홍 전 차장에 전화를 건다. 홍 전 차장은 해당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싹 다 잡아들여" "국정원에 대공 수사권을 줄테니 방첩사령부를 도와라"는 지시를 했다고 증언했다.
윤 대통령 측은 홍 전 차장에 대한 추가 전화는 구체적 지시를 하려던 게 아니라 격려 차원에서 했다는 주장이다. 윤 대통령 측은 또 "조 원장이 국내에 있다는 걸 아는 시점이라면 지시를 하더라도 평소 전화도 독대도 안하는 홍 전 차장이 아닌 원장에게 지시하지 않겠나"라고 물었고 조 원장은 이에 동의하기도 했다.
尹, 국정원장 '패싱'하고 홍장원 믿었나
그러나 증인신문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조 원장, 홍 전 차장의 평소 관계를 읽을 수 있는 다른 맥락도 드러났다. 국회 측은 이날 조 원장에게 "피청구인(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홍 전 차장을 여러 번 불러 술 마신 사실을 알고 있나"라고 물었다. 또 증인(조태용)은 대통령과 술자리를 하나"라고 물었다. 조 원장은 윤 대통령과 홍 전 차장의 술자리에 대해선 모르며 자신의 경우 "안보실장일 땐 저녁은 많이 했다. 국정원장 되고 나서는 많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직접 발언기회를 얻어 "딱 한 번 있었다"며 "공직의 위계상 (차관급과 술을 마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김형두 재판관은 지난 11일 탄핵심판에서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 증언한 지난해 3월 말 대통령과의 만찬에 대해 묻기도 했다. 해당 자리엔 신 실장과 조 원장, 김용현 전 국방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참석했다. 신 실장은 당일 윤 대통령이 '비상한 조치'를 언급하면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본인과 조 원장이 강한 우려를 표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조 원장은 "비상조치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면서도 "윤석열 정부가 해온 외교·안보 분야의 여러 성과를 말씀드리고 국민들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취지로 긍정적으로 말씀드렸다"고 했다. '비상조치' 등 표현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당일 윤 대통령을 만류하는 취지의 의견을 낸 셈이다. 당시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증언한 신 실장의 경우 몇 개월 후인 8월 국방장관에서 경질됐다.
결국 여러 정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이 비상조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던 조 원장을 '패싱'했거나, 홍 전 차장을 평소 더 신뢰한 것이 계엄 그날 '전화 통화'로 드러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윤 대통령 측은 홍 전 차장이 증언한 '체포명단'이 여러차례 작성된 경위와 홍 전 차장 경질 배경 등도 조 원장에게 물었다. 조 원장은 홍 전 차장이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지난해 8~9월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홍 전 차장이 7차례에 걸쳐 인사청탁을 했다'는 비위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의혹을 제기한 인물은 전 정부 국정원 출신인 박선원·박지원 의원으로 좁혔다. 그러나 조 원장은 해당 의혹에 대해 국정원 자체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조 원장은 홍 전 차장 증언 신빙성 문제를 계속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홍 전 차장이) 국정원장 공관 앞에서 메모를 썼다고 했지만, 그는 당시 국정원 청사 사무실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메모는 4종류가 있었고 문제의 메모는 그중 하나라고 증언했다.
조 원장이 홍 전 차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을 문제 삼은 것도 쟁점이 됐다. 국회 측은 계엄 선포 전날 조 원장이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과 통화를 한 내역이 있다고 제시했다. 홍 전 차장과 같은 기준에서 조 원장도 정치적 중립 의무에 어긋난 게 아니냐는 취지다. 이에 조 원장은 "성 의원은 친분이 있어 전화는 가끔 한다. 당장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회 측은 "(조 원장) 통화내역에 따르면 계엄 전날인 12월2일 대통령 영부인으로부터 문자를 두 통 받고, 그 다음날 답장을 보낸다"며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냐"고 물었다. 이에 조 원장은 "뭔가 남아 있다면 그걸 보시면 판단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국회 측이 "계엄 전날과 당일날 국정원장과 영부인이 문자를 주고받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묻는 질문에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