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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2국가'와 정반대였던 北 "콘크리트장벽 허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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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철거 요구에 南 "北탱크 자유왕래 막는 시설" 응수
통일부, 제 6차 남북회담 문서 공개
1984년부터 90년까지 남북회담사료
現 '적대적 2국가'와 달리 '하나의 민족'강조
통일부, 회담문서 온라인 열람 도입

연합뉴스연합뉴스
"폐쇄정책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콘크리트 장벽을 허무는 것으로부터 표시해야합니다. 귀측(남측)이 콘크리트 장벽을 허물고 자유내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며, 북과 남의 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과 각 정당 수뇌들의 협상회의에 호응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1990년 1월 31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6차 예비회담에서 북측 대표단 백남순 단장이 남측 대표들에게 한 말이다.
 
북한이 이처럼 당시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 인근에 구축한 대전차 방벽을 영구분열을 위한 '콘크리트 장벽'이라고 비난하며 철거를 요구한 것은 최근 적대적 2국가에 따라 경의선과 동해선 인근 도로를 폭파해 남북연결을 완전차단하고 장벽 등 요새화 조치를 한 것과는 정반대이다.
 
특히 남측을 향해 폐쇄정책을 버리고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의 실현을 요구하며 호통을 치는 모습은 현재 남북 상황과 비교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통일부가 13일 공개한 남북회담 문서(1984년 9월-1990년 7월)에는 북한이 1년 전부터 실행하고 있는 '동족 부정의 적대적 2국가'와 대비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북측은 당시 회담장에서 '남조선이 휴전선에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했다'며 "나라 한복판을 가로지른 콘크리트 장벽은 영구분열의 상징, 세계 어느 국경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공적 차단물", "두 개의 조선 조작" 등으로 몰아세우며 비난했다. 
 
이에 대해 남측은 영구분단의 콘크리트 장벽이 아니라 "귀측(북측) 탱크의 자유왕래를 막는 시설물이 있다. 그건 내가 인정 한다"고 응수하며 북한의 주장을 일축했다. 
 
남북고위급 6차 예비회담은 북한이 콘크리트 장벽 철거와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남북정당수뇌급 협상회의' 개최 등을 주장함에 따라 실질적인 토의가 이뤄지지 않고 성과 없이 끝났다. 
 
통일부는 "북한이 대전차 방어용 방벽을 영구분열을 위한 인공적 차단물로 왜곡하면서 대남비난에 활용했으며, 이는 최근 북한이 남북 도로 및 철도를 파괴하고 물리적 장벽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과 배치되는 행태"라고 설명했다. 
 
80년대와 90년대 회담에서는 지금과 달리 한반도에서 2개의 국가를 인정할 수 없으며 남북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는 북한이 주장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북측은 1989년 11월 11일 남북고위급 4차 예비회담에서 남측이 총리회담을 제의하자 "총리회담이라는 귀측(남측)의 회담 명칭 제안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회담에서 사용하는 명칭"이라고 반대하며 총리 회담 대신 '고위급 회담'으로 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1985년 11월 20일 5차 남북경제회담에서도 합의서에 서명을 할 때 남북의 국호를 써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북남경제회담에서 채택하는 합의서는 나라 사이에 채택하는 합의서가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 같은 민족끼리 경제협력과 교류를 실현하기 위해 채택하는 합의 문건인 만큼 서명 란에다 국호를 써넣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통일부는 남북회담 문서열람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온라인 열람 방식을 도입했다. 남북관계관리단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열람 신청이 가능하다. 아울러 서울지역 4곳으로 한정되어 있는 열람 장소를 지방으로까지 확대하여 호남권과 영남권에서도 남북회담 문서를 직접 방문해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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